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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ly-Trigger-Love

  ▶

  이민호가 이용복의 얼굴을 처음 본 건 인터넷 기사에서였다. 에버휴 이정훈 대표 아들, 호주에서의 근황. YU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에버휴 호텔’ 대표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호주에서의 유학 생활을 담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는 기사였다.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사진, 젖은 채로 과일 음료를 마시고 있는 사진,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자연을 배경으로 해 찍은 사진, 친구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 따위가 올라와 있었다. 이딴 것도 기사냐, 부잣집 아들내미 잘 먹고 잘 사는 것까지 대중이 봐야 하냐, 그런 댓글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사람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역시 여유 넘친다. 다른 재벌들이랑 달리 자연스럽다. 뭐 그런. 그렇게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YU, 특히 에버휴 호텔이 이런저런 선행ー각종 해외 봉사, 기부, 장학금부터 자잘한 선처들까지ー을 많이 베푼 착한 기업이라는 점. 두 번째로 이용복 또한 매년 해외 봉사를 나가는 등 기타 재벌가 자제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용복의 얼굴이 연예인 뺨치게 잘생겼다는 점.

 

  민호는 기사 속 용복의 사진을 뚫어져라 보았다. 부스스한 탈색 머리와 그 무엇도 걸친 것이 없어 보이는 투명한 웃음. 아름다워 보였다. 질 좋은 잠을 자고 일어나 질 좋은 음식을 먹고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것이다. 무엇 하나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되니 남아도는 시간은 각종 운동을 배우거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친구들과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 쓰겠지. 반짝이지 않을 수 없는 용복의 나날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민호는 자연스럽게 용복의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들어갔다. 밝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몇몇 사진들 사이에 아기 사진이 몇 장 끼어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커다란 아기는 용복이 해외 봉사를 나갔을 때 만난 아기로 추정됐다. 라오스. 민호로서는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나라였다.

 

  자유와 건강.

 

  사진 아래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당시 민호는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고 세 시간씩 꼬박꼬박 운동을 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건강하기 위해서? 전혀 아니었다. 오로지 복수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외치는 게 자유와 건강이라니.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 사진들을 보고 용복의 따뜻한 마음을 찬양했겠지.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하지만 민호는 알았다. 에버휴의 추악한 모습을.

 

  민호의 부친은 형사과 소속 경찰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두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하곤 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 민호도 그런 아버지 밑에서 언제나 정의, 인내, 사랑, 배려⋯⋯ 그런 따뜻하고 말랑한 것들이 중요하다고 배우며 자랐다. 이제 그런 건 다 소용없는 말이 됐다. 부친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부터. 아니, 부친이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경찰 옷을 벗게 됐을 때부터. 아니, 그 모든 게 다 이정훈이 꾸민 짓이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였던가.

 

  부친은 에버휴 호텔에서 발생한 한 여자아이의 죽음을 수사하고 있었다. 자살이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기에 공식적인 수사가 끝난 후에도 홀로 수사를 이어 나가고 있었고, 그러다 알게 된 것이다. 이 사고사에는 더 거대한 범죄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거기에는 에버휴 호텔이 엮여 있었다. 에버휴 호텔에서 투자자들과 고위 공직자 등 특정 고객에게 제공하는 ‘VIP 서비스’에 그 여자아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의혹들을 추적할수록 불법 자금 세탁, 정치인들과의 유착 관계 같은 각종 비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지 더 많은 지분과 상속을 위해 벌어진 일들이었다. 하지만 민호의 부친이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한 순간, 그가 바로 그 여자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특정 고객’이 되어 있었고, 허망함과 억울함을 이기지 못한 그는 날로 쇠약해지다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부친이 죽고 난 후 모친도 병을 얻어 쓰러졌다. 연이은 불행은 파도처럼 빠르게 민호를 덮쳤고, 늪처럼 깊게 민호를 빨아들였다. 모친까지 잃게 되자 민호는 생각했다. 나는 왜 살아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 그 답을 찾았다.

  그들에게 같은 아픔을 안겨 주기 위해. 그날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형, 무슨 생각 해?”

 

  용복이 물었다. 민호가 파드득, 과거에서 빠져나왔다.

 

  “너 겉옷 입혀야겠다는 생각.”

 

  민호는 소파 위에 걸쳐 놓았던 재킷을 챙겨 용복의 등 뒤로 갔다. 용복은 익숙하게 팔을 끼워 넣었다.

 

  “더운데 이거 꼭 입어야 해?”

  “응. 알면서 왜 물어?”

  “혹시나 오늘은 안 입어도 되나 하고.”

  “그럴 리가.”

 

  오늘 저녁, 성화식품ーYU그룹의 다른 계열사 중 하나ー회장의 딸, 용복의 사촌 누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되도록 옷을 단정하게 입을 것. 너무 당연한 지침이라 묻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용복도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가야 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알면서 꼭 한 번씩 어리광을 부렸다. 부잣집 외동아들 티를 낸다고 생각했다. 기어코 이런 패턴의 옷을 고른 것도, 뭘 하든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질 거라는 걸 알고서 하는 짓이겠지.

 

  민호는 용복이 걸친 재킷을 훑었다. 다소 밝은 그레이 색조에 빅 다미에 패턴이 눈에 띄었다. 명품 로고가 휘갈겨진, 이탈리아에서 온 재킷이었다. 용복의 가족들은 대체로 검정이나 네이비 정장을 입을 게 뻔했다. 특히 명품 로고 따위는 보이지 않는 걸로. 대놓고 보여 주는 건 졸부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명품을 걸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들의 옷장에 들어 있는 옷이 죄다 명품이었으니까. 어떤 로고를 박아 넣지 않아도 그들끼리는 알아보았다. 아니지. 굳이 알려고 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차피 값비싼 옷들일 테니. 그런 것 하나하나가 다 구역질이 났다.

 

  구역질 나는 것 가운데 가장 반짝이는 건 단연 이용복이었다. 용복은 뭐랄까⋯⋯ 좀 특이했다. 집안의 규율을 마음껏 넘나들었고, 그걸 꼭 민호에게 보여 주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지금처럼.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진짜 이거 입고 갈 거야?”

 

  민호는 일부러 용복의 옷차림을 지적했다. 용복은 눈썹 끝을 내리며 제 옷을 내려다보았다.

 

  “왜. 안 어울려?”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

  “역시 안 어울리는 거지?”

 

  이쯤 되면 원하는 답변을 해 줘야겠지. 민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어울려. 되게. 입고 가. 대표님은 내가 알아서 커버할 테니까.”

  “역시 민호 형. 잘 어울리는 거면 됐어. 그게 문제가 아니면 아무 문제도 없는 거야. Okay? 가자, 형.”

 

  민호는 제 말 몇 마디에 기분이 오르내리는 용복을 보았다. 샛노란 머리카락이 아주 살짝 뻗쳐 있었다. 자유분방한 성격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형, 빨리 와.”

 

  용복이 민호의 팔을 잡아끌고서 팔짱을 꼈다. 민호가 장난스럽게 용복의 콧등을 쳤다.

 

  “하여튼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민호의 말에 아기 고양이처럼 콧잔등을 찌푸리며 웃는 얼굴이 지나치게 맑고 아름다웠다. 교묘함이나 치밀함 따위는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민호는 그 얼굴을 계속 힐끔댔다.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시커멓고 추한 속내를 숨기고 무해하다는 듯 굴 수 있는 걸까. 용복과 함께 지내는 동안, 가끔은 그가 이정훈과는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민호는 수십 번도 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드러나는 것들에 속지 않도록.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지 않도록. 용복의 뿌리가 누구인지, 자신이 그 험난하고도 먼 길을 돌아 용복에게 접근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이정훈이 가장 아끼는 걸 망가뜨릴 생각이었다. 이정훈이 가장 아끼는 것. 그건, 햇빛 잘 드는 곳에서 온갖 방법으로 비바람을 막아 주며 곱게 키워낸 그의 외동아들. 이용복. 그러나 당시에는 용복의 얼굴도 몰랐다. 에버휴 호텔에 접근할 방법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그런 복수를 돕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부친의 동료였던 박 형사였다. 십삼 년 전, 박 형사는 민호에게 새로운 신분과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민호는 추방당하듯 대한민국을 떠나 태국, 일본 등을 떠돌며 살았다. 돈을 모았다. 성도 갈았다. 용복과 같은 성으로. 성당에 나갔다. 이정훈이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각종 무예를 익혔다. 목표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 용복을 만났다. 인스타그램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예뻤다.

 

  용복의 경호원이 되는 것까지는 꽤 쉬웠다. 각종 무예를 익힌 것에 가짜 경력까지 더하니 뽑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공식 행사에서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외에는 하는 게 없었다. 그런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니 단둘이 대화를 할 일도 거의 없었고. 민호의 복수는 용복과 가까워져야만 시작될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마치 신의 도움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교차로를 지나던 중 트럭 한 대가 민호와 용복이 타고 있는 차로 돌진해 온 것이다. 민호는 제 몸을 날려 용복을 감쌌다. 그때는 이 일로 용복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생각보다, 이렇게 허망하게 남의 손으로 용복을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용복은 그날 이후 눈에 띄게 민호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예 껌딱지처럼 거의 24시간을 함께하려 들었고.

 

  “나 민호 형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지. 형이 나 살려 준 거잖아. 형이 나 구해 주고, 나 수혈도 해 주고. 우리 피도 나눈 사이인데. 그치.”

 

  용복이 더욱 강하게 팔짱을 껴 왔다. 마치 소유욕을 주장하는 듯. 너 옷 구겨진다. 핑계를 대며 민호가 팔을 빼려고 해도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민호의 팔에 제 볼을 비비는 게 꼭 고양이 같았다. 민호는 자기도 모르게 용복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얼른 손을 거뒀다. 응? 왜? 딱 그런 표정으로 제 어깨에 볼을 꾹 누르는 용복을 보며 민호가 허, 웃음을 뱉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줄줄 나오는 용복의 애교에 점점 젖어 들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주먹 말아쥐고 엄지손톱으로 제 살을 짓누르면서 민호는 다시 한번 상기했다.

 

  이용복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용복이 나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내가 사라졌을 때 철저히 무너질 수 있도록.

 

  그리고

  나는 이용복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

  “세진 누나 살 진짜 많이 뺐다. 그치.”

  “⋯⋯너 이거 몇 잔째야?”

  “세 잔. 세진, 세 잔. 비슷하다.”

 

  용복이 푸흐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민호가 용복의 손에서 가볍게 잔을 빼 갔다.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여기서 추태를 부렸다가는⋯⋯. 이목이 집중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마셔. 취하겠다. 술도 약한 게.”

  “이미 쫌 취한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형.”

 

  용복이 손을 까딱이자 민호가 몸을 기울여 귀를 댔다.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웃음기 섞인 말에 민호가 조용히 일어섰다. 일곱 살짜리 애도 아니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굳이 보고를 하나.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화장실 가고 싶어’가 일종의 시그널이 된 지금은⋯⋯ 잡다한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냥 무시했다가는 용복이 어디로 튈지 몰랐다.

 

  민호는 고개를 까딱이며 가볍게 양해를 구한 뒤 벨루티 구두 굽 소리를 따라 화장실로 향했다. ‘수리 중’ 간판을 꺼내 문밖에 내놓는 중에도 용복은 딱딱, 재촉하듯 발을 움직였다. 허리를 펴자마자 작은 고양이가 가슴 위로 뛰어올랐다. 값비싼 옷이 구겨지든 말든 민호의 목과 허리에 코알라처럼 매달린 용복이 여기저기 입술을 붙여 왔다. 민호는 익숙하게 용복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 쪽쪽거림을 받아 줬다. 입술이 부딪히자 용복이 팔을 더욱 단단하게 조여 왔다. 세면대에 물기가 없는 것을 빠르게 눈으로 확인한 민호가 조심스럽게 그 위로 용복을 내려놓았다. 그런데도 허리에 감긴 용복의 다리는 풀릴 줄 몰랐다. 달큰한 샴페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말랑하고 축축한 혀끝이 입술을 깔짝거리자 결국 민호가 용복의 뒤통수를 한 손으로 감았다. 점점 더 깊은 곳을 탐하는 키스. 그런 키스를 할 때마다 민호는 이상한 갈증을 느꼈다. 도달하고 싶어서일까, 도달할 수 없음을 알고 있어서일까.

 

  “형, I reckon⋯⋯ we should disappear. Right now.”

 

  용복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민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사진에 가족인 네가 빠지면 되겠냐고. 민호의 말에 용복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분명 그냥 이곳을 벗어났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용복은 그 어떠한 구설수도, 제 평판도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용복에게는 그 어떠한 타격도 없을 테니까. 이런저런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면 그걸 처리하고 감당하는 건 온전히 민호의 몫이었다.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응? 형.”

 

  조르는 목소리를 무시하면 그만일 텐데 그럴 수 없는 것은 왜일까. 민호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휴대 전화를 꺼내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정훈의 비서는 용복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듣더니 잠시 침묵했다가ー아마도 이정훈에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느라 그랬겠지ー허락을 전했다. 이정훈은 그 교통사고 이후 용복의 건강 상태에 더욱 더 극도로 예민하게 굴었다. 그러니 용복의 컨디션은 아주 좋은 핑계였다. 앞에 정말 이정훈이 있기라도 한 듯, 민호는 고개를 푹푹 숙이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가도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용복이 생글생글 웃었다. 싱그럽고 천진난만해서 얄미울 정도였다.

 

  호텔 직원이 차를 빼 오자 민호가 자연스럽게 뒷좌석 문을 열었다. 용복이 허리를 굽히는 타이밍에 맞춰 머리 위쪽에 손을 댔다. 용복이 차에 올라타면서 병아리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손바닥을 간질댔다. 민호는 머리카락이 스친 손바닥을 매만지며 운전석 쪽으로 갔다. 집까지 운전하는 사람은 항상 민호였다. 용복은 지친 사람처럼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으면서, 호텔이 보이지 않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러더니 작은 체구를 이용해 조수석으로 넘어왔다. 민호가 급히 손을 뻗어 용복이 제 팔을 잡게끔 했다. 용복은 고급 시트를 구두로 짓밟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온통 민호를 향해 있는 모양이었다.

 

  “형이 그러는 거 위험하다고 했지.”

  “형은 혼낼 때 섹시하다고 했지.”

  “무섭게 혼내 줘?”

  “응.”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걸 알았기에 민호는 입을 다물었다. 한 번도 제대로 혼나 본 적 없는 천사 같은 용복은, 그 누구도 함부로 뭐라 할 수 없는 용복은, 민호가 진심으로 혼을 낼 때마다 묘하게 눈을 반짝였다. 기대감에 부푼 가슴이 오르내리고 입맛을 다셨다. 진짜 골 때리는 특이 취향이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걸 갈구하는 건지, 아니면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었거나 발랑 까져서 저런 취향을 가지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든 민호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던 미지의 땅에 발을 내디딘 셈이었으니까. 용복의 입맛에 딱 맞는 남자가 될 필요가 있었다. 저 마음을 온전히 정복하고 나면 미련 없이, 아주 무참히 자신을 내던질 계획이었다. 그리고 용복을 서서히 말려 죽여서 이정훈의 마음마저 지옥 속에 처박을 것이다.

 

  민호의 마음에 어떤 생각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용복은 민호의 오른손을 가져다 입을 맞춰댔다. 민호는 자연스럽게 용복의 손가락 사이사이 제 손가락을 엮었다. 용복은 이렇게 깍지를 낀 채 기어를 변경하는 걸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창에 머리를 살짝 기대면서, 그윽한 눈빛을 보내며 형은 진짜 섹시한 것 같아⋯⋯ 중얼거리곤 했다. 대꾸하지는 않았다. 그럴 때는 살짝 무심하게 굴어야 더 좋아했다.

 

  또 용복이 좋아하는 게 뭐가 있더라. 민호는 노트북에 파일로 정리해 둘 만큼 방대했던 목록을 떠올렸다. 해변에 누워 있기. 유일하게 할 줄 모르는 운동이 수영이라, 바닷가에 가자고 떼를 쓸 때면 곤란했는데, 막상 수영은 물장구 수준으로만 하고 그냥 모래 위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 다행이었다. 카페 탐방. 맛집 탐방에는 딱히 큰 관심 없으면서 달달한 디저트가 맛있는 카페 탐방은 또 좋아했다. 이건 은근히 잘 맞아서 함께 단골 카페를 몇 군데 뚫기도 했고. 목욕하기. 사우나, 온천뿐만 아니라 욕조에 들어가는 것도 좋아해서 거의 매일같이 목욕물을 받는 주제에 용복은 늘 오 분도 못 버티고 물 밖으로 나왔다. 그래 놓고 매번 데운 물이 아깝다는 핑계로 꼭 민호까지 물에 집어넣었다. 최근에는⋯⋯ 틱톡인지 릴스인지. 뭔 영상을 찍겠다고 거치대부터 사더니 틈만 나면 형,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민호를 불러댔다. 덕분에 민호는 관심도 없던 케이팝 노래를 꿰고 다녔고, 도피 아닌 도피 생활에 익숙해져 사진 찍는 것을 거부했던 과거도 잊은 채 이제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그런 생활들이, 도착한 용복의 오피스텔만큼이나 익숙해졌다. 징그럽게도.

 

  “대박. 수액 맞고 그거 사진 찍어 보내래.”

 

  차에서 내리자마자 휴대 전화를 확인한 용복이 말했다. 컨디션 난조라는 핑계로 자리를 빠져나왔으니 걱정 반 의심 반의 마음으로 연락한 걸 테지. 이런 일은 수도 없이 겪었다.

 

  “전에 여러 장 찍었잖아. 네 번째 사진 보내면 돼.”

  “맞다. 일부러 셔츠도 엄청 베이직한 걸로 입었었지, 참.”

  “어, 밑에서 세 번째까지는 이미 쓴 사진. 그냥 삭제해. 그다음 것부터 보내면 된다.”

  “가만 보면 형은 몸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머리도 잘 쓰는 것 같아. 최고.”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서 용복은 사진첩에서 사진 몇 장을 골랐다. 민호가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향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다가 문을 열어 주자 그제야 발을 땅으로 내렸다. 햇빛에 구두 가죽이 쨍하게 빛났다.

 

  “이 셔츠가 지금 입은 거랑 제일 비슷한 것 같아. 한 시간 후에 보내 줘.”

  “어. 올라가자마자 씻을 거지?”

  “응, 목욕 같이 하자.”

  “그래.”

 

  목욕물을 받는 동안 민호는 용복이 골라 준 사진을 예약 메시지로 전송 대기해 뒀다. 용복과의 목욕은 절대로 한 시간 안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때때로 ‘이런 것까지 보고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을 보고해야 하기도 했다. 이정훈은 슬슬 용복에게 경영을 맡기고 싶은 눈치였지만, 모른 척하는 건지 모르는 건지 용복은 전혀 호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호주에서 호텔경영학과를 전공했다면서 한국에 돌아와서 한 일이라고는 카메라에 얼굴 몇 번 비친 것뿐이었다. 대신 입에 이민호, 이민호, 이민호를 달고 살았다. 그러니 이정훈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용복 대신 민호를 호출해 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가끔 이정훈의 감시 카메라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용복이 어디서 사고를 치다 자신의 얼굴에 먹칠이라도 할까 싶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민호가 보기에 용복이 저지르는 최대의 실수라고는 자신과 붙어먹는 일밖에 없었다. 선은 이미 오래전에 넘었다. 이정훈이 알게 되면 엄청난 충격에 빠지겠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있을 일이었고, 그가 큰 충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민호에게는 오히려 더 큰 기쁨이 될 것이었다.

 

  “형, 나 오늘은 이거.”

 

  용복이 입욕제 하나를 골라 내밀었다. 용복은 꼭 저처럼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입욕제만 사 모아댔다. 물 속에 동그란 원형 입욕제를 빠뜨리자 금방 물이 핑크색으로 물들었다. 민호는 욕조 안에 손을 넣어 몇 번 저은 후 차가운 물을 조금 더 틀었다. 뜨거운 물에 오래 있지 못하는 용복을 위해 항상 물은 미지근하게 맞춰 왔다.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만 따뜻하게. 그렇게 해 줘도 용복은 몇 번 물장구를 치다 금방 어지럽다며 욕조 밖으로 나왔지만.

 

  오늘따라 용복의 어지럼증 호소는 더 심했다. 가냘픈 드라마 주인공 흉내라도 내는 듯 민호의 품에 폭 기대서 쓰다듬이나 받으려 들었다. 어차피 미지근했던 물도 금방 차게 식어 오래 들어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민호는 결국 샤워 가운을 챙겨 입고 일어섰다. 익숙하게 타이레놀이랑 비타민, 물과 바나나우유를 챙겨 침실로 가니 붉은 얼굴로 색색거리는 용복이 팔을 벌렸다. 민호가 용복을 안아 상체를 일으켰다. 이건 뭐, 경호원인지 보모인지 아니면 연인인지.

 

  “술 마시고 목욕해서 어지러운 것 아니야?”

  “겨우 세 잔 마셨어, 세 잔. 형 그거 과보호야. 아빠 따라 하는 거야?”

  “대표님이랑 내 마음이 같을 수는 없지.”

 

  죽이고 싶은 마음과 살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민호는 그 말을 삼켰다.

 

  “그래. 아빠 같은 사람이랑 형이 어떻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일 수가 있어.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알잖아, 아빠는 조금⋯⋯.”

 

  용복이 미간을 찌푸렸다. 민호는 그런 용복의 이마를 한 번 짚어 본 뒤 타이레놀 한 알을 입안에 넣어 주었다. 물잔을 입술에 대자 버거운 듯 얼굴을 구기면서 약을 삼켰다. 그다음은 비타민 차례였다. 젤리 형태로 된 비타민은 순전히 용복의 입맛에 맞춘 거였다. 애새끼 입맛 덕분에 일이 쉬웠다. 아주 소량의 독극물을 주입한 젤리를 먹이면 되었으니까.

 

  약으로도 사용되는 독극물이라고 했다. 아주 소량만 섭취한다면 당장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민호의 마음에 들었다.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민호는 주사기를 이용해 그걸 아주 극소량만 젤리에 넣었다. 비타민을 두 통 중 한 통은 독극물이 든 젤리로, 나머지 한 통은 독극물이 들지 않은 젤리로 채워 두었다. 용복과 사이가 좋았던 날ー오늘처럼 같이 목욕도 하고 키스도 한 날ー이면 비타민에 독극물이 든 젤리를, 용복과 서먹한 날ー별것 아닌 일로 말다툼을 하거나 ‘진짜’ 컨디션 난조로 용복이 괜한 성질을 부린 날ー이면 독극물이 들어 있지 않은 젤리를 주었다. 행복한 날 조금 더 죽음에 다가가는 용복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단지 자신이 죽는 것만으로는 이 복수를 완성할 수 없었다. 이 복수는, 궁극적으로는 이정훈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 복수가 완성되려면 이정훈도 용복을 잃어야 했다. 잃어야지. 소중한 사람이, 소중한 내 가족이 앓다가 죽어버렸을 때의 고통을 느껴야지. 분명 그래야 했다. 자신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 주려면. 그렇게 한다고 한들 민호가 느꼈을 억울함까지는 느끼지 못할 테지만.

 

  민호는 용복이 젤리를 씹어 삼키는 걸 빤히 보았다. 아랫입술보다 살짝 더 나온 윗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지금 혀를 섞으면 상큼한 비타민 젤리의 맛이 혀끝에 전해질 텐데. 그게 독극물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훑어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아 건넸다. 젤리를 씹느라 오물대던 입술이 이제 빨대를 물었다. 볼이 쏙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빨대를 빨아대는 걸 보며, 민호가 하악근이 나올 정도로 세게 이를 물었다. 당장이라도 이 평온한 일상을 망치고 싶다, 저 가느다란 목을 비틀고 싶다는 생각과 저 턱을 붙잡고 숨이 부족할 때까지 입술을 빨고 싶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마음이 마구잡이로 요동쳤다.

 

  “형.”

  “어.”

  “형은 만약에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용복이 다 마신 우유를 내밀며 물었다. 빈 우유통을 쥐는 민호의 손이 살짝 떨렸다. 혹시 무언가를 눈치라도 챈 걸까. 민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답했다.

 

  “⋯⋯갑자기 그건 왜.”

  “그냥. 문득 생각해 보니까, 나는 형이 죽으면 도저히 못 살 것 같아서.”

  “⋯⋯.”

  “봐. 하나부터 열까지 다 형 손길이 닿아야 하는 거.”

 

  용복이 우유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민호가 거칠게 우유통을 쓰레기통 안에 처넣으며 말했다.

 

  “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어, 없는데.”

 

  아니. 수도 없이 생각했다.

 

  “나 죽으면 형 잘리나?”

  “그럴 일 없게 오래오래 살아.”

 

  죄다 거짓말이다. 네가 죽어야 끝나는 복수를 매일같이 생각하며 살아 왔다.

 

  “그래서, 어떨 것 같은데.”

  “⋯⋯.”

  “이민호.”

 

  기어이 명령질이었다. 민호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용복을 노려보았다. 이게 지금 연기를 하는 중인 건지, 정말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정말 기분이 상한 거라면, 어째서? 사랑해서는 안 된다. 용복을 끌어안을 때마다, 용복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외웠던 그 명령문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어떨 것 같은데.”

  “엄청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데? 형은 쌩하니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날 것 같아.”

  “야.”

  “그런데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뭐?”

  “나는 형이 없으면 못 살 테지만, 형은 내가 없어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

  “⋯⋯.”

  “그래도 화 안 내고 용서해 줄게.”

 

  용복이 싱긋 웃었다. 민호는 웃지 않았다. 대신 거칠게 용복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그냥 자. 헛소리 그만하고.”

  “음, 나 양치질 안 했는데⋯⋯.”

  “⋯⋯.”

  “왜 화났어?”

 

  민호는 대답 대신 용복의 어깨를 더욱 꽉 쥐었다. 한 번도 험한 것을 짊어져 본 적 없을 말랑한 어깨 사이로 민호의 투박한 엄지가 파고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갖은 엄살을 다 떨며 민호의 손목을 잡아 왔을 용복이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이 체벌 같은 손길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신 민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형, 나를 좋아하고 있어?”

 

  그 순간, 민호는 어떠한 계산도 없이, 그걸 거치기도 전에 입 밖으로 답을 뱉었다. 이렇게까지 어떠한 계산도 없는 답변은 처음이었다.

 

  “응.”

 

  그 자리가 도망칠 수 없는 제 마음의 늪이라는 사실을, 민호는 비로소 깨달았다.

 

  용복이 제 목을 와락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릴 때, 그의 등을 끌어안으면서 민호는 이 복수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용복의 목소리, 웃음소리, 목덜미에서 나는 푸릇하고도 달콤한 냄새, 도드라진 날개뼈와 등뼈, 뻣뻣한 머리카락. 하나하나 다 기억하기 위해 민호는 온몸으로 용복을 끌어안았다. 용복이 민호의 두 뺨을 감싸 쥐었다. 울지 마.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은 표정으로,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은 뺨 위에서 눈물을 닦아내는 듯.

 

  그때까지만 해도 민호는 제 손으로 이 모든 복수를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민호 형, 잘 지내고 있어? 이 음성을 듣고 있다는 건, 아마 형이 이제 더는 거짓말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거겠지? 잘된 일이야. 형은 내 옆에서 항상 거짓말을 하며 살았잖아. 이름도, 과거도, 감정도. 나는 그게 참 싫었는데, 그걸 형이 보는 앞에서 뒤집어 볼 용기는 없었어. 만약 그랬다면 우리 관계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아마 아니었을 거야. 형은 끝까지 형의 할 일을 해냈을 거야. 형은 그런 사람이니까.

 

  우리가 조금 다르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이미 엎질러진 물을 전부 다 주워 담을 수 없듯, 이미 이렇게 태어난 우리는 다른 길을 택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그런 가정을 해 보곤 했어. 하지만 다 알면서 시작한 마음이니까 조금 더 특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마음이 조금은 특별하게 형에게 가 닿지 않을까. 그런 작은 희망도 품었었는데.

 

  이쯤이면 그건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은데? 되게 놀랐겠지? 물론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건 아니야. 형을 고용하고 난 뒤, 한참 뒤에 알았어. 왜, 그때 기억해? 나 갑자기 열 많이 나서 형 집에도 못 가고 밤새 내 옆에 있었던 날. 언제 열이 심해질까 싶어 멀리 자리도 못 뜨고 형은 내 드레스룸에 들어가서 통화를 했지. 그 몇 분 자리 비우는 걸 못 해서 다 들키고 만 거야. 형이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서.

 

  그날 이후 며칠 동안 까칠하게 굴어서 미안해. 형이 신발끈 묶어 주는데 일부러 손등 밟은 것도. 날도 더운데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 하루 종일 서울 뺑뺑이 돌게 한 것도. 목욕물 온도로 시비 건 것도. 형 얼굴에 와인잔 던진 것도.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방문 잠근 것도. 형이 문고리 흔들면서 제발 문만 좀 열어 두라고 할 때, 솔직히 나 좋았어. 형이 나를 정말로 사랑해 주는 기분이어서. 나를 혼내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옆에 있어 주는 게 정말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거든. 그런 걸 언제나 바랐으니까.

 

  형이 어떤 마음으로 내 옆에 있는지 다 알면서도 형을 미워할 수 없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야. 그리고⋯⋯ 나 또한 아빠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했으니까. 내 안에 그런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싫었으니까. 그래서 영원히 도망치려 했어. 그 호텔과 아버지로부터. 그런데 내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어? 영원히 그 트랙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어. 그 순간 해답처럼 형이 내 앞에 나타난 거야. 나를 죽이기 위해. 나는 솔직히,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민호 형. 나는 형이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 믿어. 아니, 솔직히 거짓이어도 좋아. 나는 형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해. 형은 그 어떠한 죄책감도 가질 필요가 없어. 함께 보낸 서류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이미 오래 살 수 없는 몸이었고⋯⋯. 그냥 시기가 조금 당겨진 거라고 여겨 줘. 그러니까 이제 비타민 줄 때마다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돼. 내가 형의 복수를 완성시켜 줄게. 이건 나의 소망이기도 했어. 형을 향한 내 사랑이 조금은 느껴져?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 없던 그 마음 말이야.

 

  그래도 조금이나마 내게 마음이 쓰인다면, 하나만 약속해 줘. 내가 없어도 잘 지내겠다는 약속. 그날 형은 대답해 주지 않았지. 그러니 지금 해 줘. 잘 지내야 해, 형. 만약 내가 자꾸만 떠오른다면⋯⋯ 우리 마지막에 바다 보러 간 날 찍었던 사진, 형이랑 동갑쯤으로 보인다고 놀렸었지? 내가 그 나이가 될 때까지만. 딱 그만큼만 나를 기억하고, 그 이후로는 아예 잊어버려. 정말로. 삐치지 않을게.

 

  용서하겠다는 말은 진심이었어.

  나도 용서해 줘.

  사랑해.

 

 

 

  ▶

  대뜸 염색을 해 달라고 했다. 필요하면 미용실을 예약해 주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사람을 불러 주겠다 했더니 그것도 싫다며 고개를 살랑살랑. 그냥 형이 해 줘. 까맣게. 그 말에 민호는 의아함과 대견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드디어 정신 차린 거야? 회사 나가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으니까.”

 

  진심인 듯 용복의 표정이 꽤 결연했다. 민호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용복이 내민 염색약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며칠 감기로 고생하더니 다른 사람이 됐나.”

 

  민호의 말에 용복이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나는 원래 사람이었어, 하며.

 

  며칠 전, 가볍게 산책을 나갔다 오는 길에 용복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칠게 호흡하며 가슴을 붙잡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놀란 민호가 119를 부르려 하니 용복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 쉬면 괜찮을 거라며, 대신 집까지 업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런 장난은 수도 없이 쳐 왔거니와, 용복은 조금만 몸이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 당당하게 민호의 등을 요구했기에 민호는 이번에도 용복이 장난을 치는 거라 여겼다. 업혀서 다리 한 번을 달랑거리지 않았는데 눈치도 못 채고.

 

  밤에 열이 오르고 나서야 폐렴이 아닐까 싶었다. 곧 죽어도 괜찮다고 의사를 부르지 말라는 명령에 민호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사흘. 그때까지 전혀 낫지 않으면 그때는 병원에 가야 한다며 혼을 내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영 못 미더웠는데. 용복은 정말 사흘 만에 털고 일어났다. 제 생일에 맞춰.

 

  “네 생일이 기일 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그랬어, 우리 형? 걱정했어?”

  “어. 혹시나 나한테 바이러스 옮길까 봐 그것도 좀 걱정되더라.”

 

  치⋯⋯. 용복이 뒤로 손을 뻗어 민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가만히 안 있으면 네 이마에 발라 버린다.”

 

  민호가 아프지 않게 머리카락을 살살 빗고 그 위로 염색약을 펴 발랐다. 까맣게 칠해진 머리를 마지막으로 싹싹 빗어 넘기니 부드러운 얼굴 곡선이 더 잘 드러났다. 눈썹까지 번진 주근깨도.

 

  민호는 그 주근깨들을 꽤 좋아했다. 용복과 한 침대에서 자는 날이면 그걸 엄지로 문지르며 꼭 별가루 같다고 말해 주곤 했다. What is 별가루? 용복이 모른 척 물으면 민호는 끝내 대답해 주지 않았다. 너무 간지러웠으니까.

 

  “머리 이렇게 넘긴 거 어때?”

  “뭐가 어때.”

  “어른스러워 보여?”

  “아빠 왁스 바른 초딩 같은데.”

  “진짜? 안 되는데.”

  “왜. 늙어 보이고 싶어?”

 

  용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뭐 좋은 거라고 늙어 보이고 싶다는 건지. 민호는 이해할 수 없는 용복의 정신세계에 매번 감탄했다.

 

  “머리 감고 오면 만져 줄게.”

 

  거의 매일 왁스로 머리를 세팅하는 민호에게는 그런 일쯤은 아무래도 식은 죽 먹기였다. 용복은 신난 얼굴로 욕실에 들어갔다. 검은 물 뚝뚝 흘리며 나오는 거 붙들어서 머리도 털어 주고, 드라이어로 바짝 말려 주고, 빗겨 주고. 또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헷갈려 올 때쯤, 용복이 고개를 돌렸다.

 

  “형, 마지막으로 끝내 주게 놀자. 오늘 내 생일이니까.”

  “마지막?”

  “이제 호텔 들어가서 일 배우기 시작하면 이렇게 마음껏 못 놀 거잖아. 기자들도 엄청 붙어서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려울 거고.”

 

  응? 응? 용복이 조르듯 물었다. 생긴 건 꼭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생겨서. 눈썹 떨구고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시련들을 이런 애교로 무마해 왔을지 안 봐도 뻔했다. 민호는 용복의 머리통을 붙잡고 다시 앞을 보게 했다. 큼큼. 목 한 번 가다듬고, 그래, 생일이니까, 하며 선심 쓴다는 듯 대답했다. 머릿속에는 사이렌이 세차게 울리고 있었다. 방금 뭔가, 굉장히 위험했다.

 

  염색도 하고 머리까지 올리니 확실히 어린 아이 같은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민호가 나랑 동갑이라고 해도 믿겠다며 장난스레 말했다. 용복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러면 아무도 우리 형제라고 오해 안 하겠네? 왜, 종종 그런 소리 들었잖아. 형제냐고.”

 

  오히려 더 신이 나서는 그렇게 쫑알댔다. 한 번도 그런 게 신경 쓰인다고 말한 적 없었으면서, 여태껏 그렇게 엮이기 싫었던 걸까. 민호는 오해를 쌓았다.

 

  용복이 원하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용복이 원하는 곳에서 디저트를 먹고, 용복이 원하는 곳에서 서로를 끌어안는 게 평소의 생일 코스였다. 하지만 용복이 이번에는 죄다 이민호가 좋아하는 곳, 이민호가 먹고 싶은 거, 이민호가 가 보고 싶은 데로 코스를 짜자고 했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거야? 내 생일도 아닌데? 조금 귀찮았던 민호는 대충 서치해서 나오는 곳 몇 군데를 집었다. 나 이거 먹고 싶어. 그러면서 웬 국밥집에 데리고 갔다. 이런 걸 먹어나 봤을까 했는데, 용복은 의외로 잘 먹었다.

 

  “정말 이런 게 먹고 싶었어? 진작 말을 하지.”

 

  그러면서 누린내가 나는 국밥을 싹싹 긁어 먹었다. 아무 곳이나 골라 온 게 조금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다음 계획도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한강에나 갔다. 용복의 오피스텔에서 매일 볼 수 있는 바로 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매일 보는 한강이었을 텐데 용복은 지루하지도 않은지 강가를 걸으며 들꽃을 봤다가,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봤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을 봤다가 하며 여기저기서 민호를 불러댔다. 머리만 올리면 뭐 하겠냐고. 하는 짓이 딱 어린 아이 같은데. 민호는 언제나 그랬듯이 못 이기는 척 용복이 부르면 부르는 대로 그쪽으로 향했다. 들꽃 냄새를 맡으라면 맡았고ー아무 냄새도 안 났다ー아이는 몇 명 낳을 거냐는 개저씨 같은 질문에 골똘히 생각하는 척ー나 딩크족인 듯?ー해 줬다.

 

  형, 나 여기서 사진 찍어 줘. 형 나 저기서. 형 나 앉아 있는 거 찍어 봐. 조금이라도 괜찮은 풍경이다 싶으면 민호를 불러다 전담 사진사처럼 부려먹기도 했다. 평소에는 턱을 괴거나 뒤를 돌아보는 등 자연스럽게 포즈도 취하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정자세로 선 채 웃기만 했다. 보다 못한 민호가 브이라도 하라며 한마디 하자 용복은 그제야 손을 들어 브이 포즈를 취했다. 인상을 팍 찌푸린 채 어느 순간 자신보다 더 진심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민호가 웃기기라도 했는지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민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찍었다. 용복은 눈 주위에 주름이 잡히고 치아가 다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을 때 오히려 아름다워 보였으니까.

 

  사진을 찍느라 기력을 소진했는지,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용복은 눈에 띄게 표정이 굳었다. 집에 들어가자는 말에 용복은 고개를 저었다. 노래 딱 세 곡만 듣고 가. 그러면서 민호의 손목을 당겼다. 그래서 맨바닥에 아무것도 안 깔고 앉아 노래도 들었다.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끼고. 곧 용복이 툭, 민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 왔다.

 

  “머리 아파?”

  “아니이. 딱 좋아.”

 

  용복의 눈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처럼.

 

  “형, 오늘은 나 혼자 들어갈게. 형도 형 집에 가.”

 

  용복이 숨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싸운 것도 아닌데 이런 건 처음이었다. 민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용복을 내려다봤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왜 또. 케이크 안 먹게?”

  “케이크 주문해 뒀어?”

  “어, 늘 주문하는 곳에서.”

  “그러면 그건 형 먹어. 나 지금 속이 좀 안 좋아.”

 

  아까 잔뜩 먹인 국밥이 생각났다. 용복은 최상급 고기로 만든 갈비탕 같은 거나 먹는데. 냄새가 나는 고기 같은 거 먹어 본 적 없을 텐데. 간혹 자극적인 걸 먹는답시고 치킨을 먹지만, 그마저도 속에서 잘 안 받아 줘서 두세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였다. 그런 애한테 위생 불량 식당에서 파는 허접한 국밥을 먹였으니 속이 좋을 리가 있나. 민호가 제 이마를 긁었다. 사과를 해야 할지, 간호해 주겠다고 해야 할지 말을 고르는데, 약속한 세 곡 중 마지막 곡이 끝났다.

 

  “이제 가자, 형.”

 

  용복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피스텔로 향하는 길에 괜히 소화제를 사 줄까,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말을 걸어도 용복은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현관문 앞에서의 이별은 오랜만이었다.

 

  “혹시나 필요하면 전화해.”

  “당연하지.”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말고 자.”

  “알았어.”

 

  용복이 손을 흔들었다. 민호가 찝찝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닫으려다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용복의 뒤통수를 끌어당겨 짧게 입을 맞췄다. 입술 사이로 용복이 웃음을 흘렸다. 뭐야, 형? 용복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귀엽다는 듯 보는 눈빛에 귀가 달아올랐다.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뭐⋯⋯ 생일 축하해.”

  “생일 선물 멋지다. 여태 받았던 것 중에 제일 좋아.”

  “그럴 리가.”

 

  민호는 아침에 용복의 앞으로 들어왔던 방대한 양의 선물들을 떠올렸다. 그걸 정리하느라 오전 시간을 꼬박 할애해야 했다. 향수나 특산물 같은 선물은 비교적 저가 선물에 속했다. 가방, 시계, 구두 같은 명품 선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정훈은 이번에도 주식을 선물로 주었을까. 그런 선물들 중에 자신의 입맞춤이 가장 가치가 있을 리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민호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이겠지만.

 

  “진짜로. 오늘 너무 즐거웠어.”

 

  용복이 민호의 손을 한 번 잡았다 놓았다.

 

  “조심해서 가, 형.”

  “어,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잘 가.”

 

  민호가 손을 한 번 들어 보인 후 현관문을 닫았다. 18, 17, 16, 15⋯⋯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호는 주르륵 주저앉았다. 가슴이 뻐근하고 숨이 막혔다. 갑작스러운 통증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난 후 멎었다. 민호는 제 가슴께를 매만지며 의아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전부 다 예고 같은 거였을까.

 

  다음 날, 민호는 용복을 만날 수 없었다.

 

 

 

  ■

  증오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용복을 잃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더욱 증오했고, 너를 너무 증오해서 더욱 사랑한 거야.

 

  얼마 안 되는 짐이 담긴 상자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민호는 그 짐들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다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휴대 전화를 켰다. 브이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용복이 반겨 주었다. 온 세상이 다 네 이야기뿐이야, 용복아. 민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용복이 바란 게 그런 건 아니었을 텐데. 그것까지 지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민호는 그 기사들을 외면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정훈이 큰 충격으로 쓰러졌다는 기사만큼은 스크랩을 해 두었다. 의식이 돌아올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했다. 잘된 일이었다. 잘된 일이 분명할 텐데⋯⋯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비타민 섭취는 기분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민호는 비타민 두 통을 시켰다. 용복이 먹던 비타민 젤리였다. 뚜껑을 열고 하나를 꺼내 씹었다. 상큼달달한 기분 좋은 맛과 끈적하고 기분 나쁜 식감이 동시에 전해졌다. 그래도 계속 씹었다. 씹어 삼켰다. 하나를 오래도록 씹었다. 즙이 다 빠지고 나중에는 아무 맛도 안 느껴질 정도로 오래도록 무참히. 이제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그렇게 비타민 한 통을 다 비울 때까지.

 

  밤낮 없이 내리 잤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니 불면이 찾아왔다.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민호는 용복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음성 메시지를 남기라는 말이 나오면 끊기 바빴던 민호가 한참 말을 골랐다. 처음이 이딴 식이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 분노가 이제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랐다. 스스로를 향해 있던 화살은 용복이 진작 꺾어 버렸다.

 

  용복아. 네가 죽으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지. 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했었어. 그런데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이네.

 

  내가 이렇게 아플 거, 너 정말 몰랐어? 내가 찍은 사진이 네 영정 사진이 된 걸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너 정말 아무것도 예상 못 했어? 모든 게 이렇게 철저한 네가?

 

  며칠 전 네가 미리 보낸 서류를 받았어. 음성 메시지도. 진단서더라. 모든 게 한 번에 이해가 됐어. 내가 먹였던 그 약, 심장병 약으로도 쓰인대. 그래서 모든 게 사고사로 결론이 났어. 그것까지 계산한 거였냐. 그렇겠지. 이렇게 못되게 구는 건 누구에게 배웠냐고 따지고 싶은데, 그게 아마 나인 것 같아서 따질 수도 없겠다.

 

  나를 용서하겠다고 했지.

  용서하지 마. 나도 그럴 테니까. 나는 나도, 너도 용서가 안 되니까.

  나는 네 마지막 날을 그렇게 보냈다는 것 때문에 이제 잠도 안 와.

 

  용복아.

  너는 어떻게 그 말을, 생전 처음으로 해 준 그 말을, 그 메시지에 담을 수가 있냐.

  어떻게.

 

 

 

  ◀◀

  이용복이 이민호의 얼굴을 처음 본 건 몇 장의 서류에서였다. 자신의 경호원으로 지원한 사람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몇 명 추린 후였다. 일곱 명 중 민호가 가장 눈에 띄었다. 민호는 서른을 넘긴 나이였지만 하관이 짧아 그런지 그보다 앳돼 보였다. 그러면서도 눈은 제법 또렷하고 깊은 게, 안에 무언가를 많이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단순히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눈길이 갔다. 많은 시간 붙어 지낼 예정이니 이왕이면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에서였다. 막상 만나서 보니 더욱 자신의 취향이라 용복은 첫 만남에 민호에게 반했다. 이력도 나쁘지 않아 면접 후 강하게 어필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다들 동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용복의 고집에 민호는 뽑혔을 테지만.

 

  자유분방한 용복이 어울리지도 않게 경호원을 고용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스토킹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지더니, 문을 따고 침입하려 했던 흔적, 각종 우편물들이 뜯겨 있는 것 등 다소 위험한 흔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기자들이 종종 사진을 찍어 가기도 하고, 극성 기자라면 우편물 정도는 뜯어 보기도 하니까. 재벌 3세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결국에는 오토바이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때 용복은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 나 죽을 수도 있구나. 그것도 타지에서. 그래서 학교 졸업도 했겠다, 치료가 끝나는 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리 큰 사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교통사고니 이런저런 검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권유에 따라 각종 검사들을 진행했다. 가벼운 사고로 과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용복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치료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Have you been feeling overly tired at all? Any shortness of breath or chest pain?”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검사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내뱉는 각종 단어들이 웅웅거리듯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용복은⋯⋯ 시한폭탄과 다를 바 없는 심장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원래도 엄청 건강한 체질은 못 되었지만,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용복은 혼란스러웠다. 호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온 데에는 그 이유도 있었다. 한국에서 한 번 더 정밀 검사를 받아 볼 생각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귀국해 곧장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 에, 나 아직 스물여섯인데. 황당하네. 용복은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이상하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용복이 귀국한 뒤, 이정훈은 계속해서 용복을 경영자 자리에 앉히고 싶어 했다. 우선 실무를 좀 배운 뒤 서른 살에 이사 자리에 앉혀 주겠다는 혼자만의 약속도 여러 번 했고. 용복을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말이었다.

 

  “제가 경영하면, 제 마음대로 해도 돼요?”

  “무슨 말이냐?”

  “VIP 서비스 같은 것 없애고, 쓸데없는 뇌물 안 먹이고. 그렇게 경영해도 되는 건지 궁금해서.”

 

  용복의 말에 이정훈은 얼굴을 확 찌푸렸다.

 

  “설마 제가 모르는 줄 아셨어요?”

 

  이정훈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분노일까 수치심일까. 용복은 가늠해 보았다. 아마, 수치심은 아니겠지. 수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니까. 자신의 행동에 반기를 드는 게 못마땅할 뿐일 거다. 그는 용복에게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는 모양인지 목만 몇 번 가다듬고는 이만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용복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그날 저녁, 민호의 정강이가 시커멓게 물들어 있지만 않았어도. 그러기만 했어도 용복은 그럭저럭 살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열심히 약도 지어다 먹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적당히 방황하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했을지도 몰랐다. 이정훈이 그토록 바라던 에버휴 호텔 대표 자리를 물려받았을지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가 민호에게로 향했다는 걸 안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That’s disgusting⋯⋯. 용복은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화가 나서 눈물을 쭐쭐 흘렸다.

 

  언제부터 이민호를 그렇게 사랑하게 된 걸까. 그러니까, 단순히 얼굴이 취향인 걸 넘어서서⋯⋯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딴 집구석에서 태어났으니 누구든 나를 노릴 만하다고 생각하며 삶을 지키려는 의지를 버린 순간, 온몸으로 나를 지켜 주었을 때? 내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데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받아 줬을 때? 그러다 선을 넘으면 정말 부모처럼, 형처럼 손목을 붙들고 엄하게 혼내 줬을 때? 나를 버려도 납득이 될 만큼 진상을 떨었는데도 눈 한번 흘기고 뒷처리를 해 주었을 때? 사실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용복 자신이 민호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민호의 비밀을 알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민호는 용복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인간의 유형이었다. 자신에게 다 맞춰 주는 것 같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권위를 탈취하고 우위를 점하고, 한없이 강인한 사람인 것처럼 굴다가도 조금만 그의 마음을 찌르면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무르게 행동했다. 등을 내어 주고 품을 내어 주고 마음을 내어 줬다. 그런 척이라도 했다. 모두가 용복을 이용해 먹으려 들 때, 민호는 용복의 뿌리까지 쥐고 흔들려 했다. 사랑 너머의 것을 봤다. 그런 사람인 걸 알아서 용복은 민호를 더욱 놓을 수가 없었다. 민호의 뜻대로 다 하게 두려고 했다. 그래서 비타민에 무얼 넣는지 알면서도 꼬박꼬박 씹어 삼켜 주었다.

 

  민호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려 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용복은 자신을 죽이려 드는 것보다, 민호가 스스로를 죽이려 든다는 사실에 더 큰 배신감을 느꼈다. 민호에게 벌을 주고 싶어질 만큼.

 

  “형은 만약에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갑자기 그건 왜.”

 

  형의 계획을 망치려고.

 

  “그냥. 문득 생각해 보니까, 나는 형이 죽으면 도저히 못 살 것 같아서.”

 

  형도 모르지 않잖아. 그러면서 나만 두고 가겠다고. 차라리 나를 죽여, 형.

 

  “그래서, 어떨 것 같은데.”

  “⋯⋯.”

  “이민호.”

  “⋯⋯어떨 것 같은데.”

  “엄청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데? 형은 쌩하니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날 것 같아.”

 

  그랬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나는 형이 없으면 못 살 테지만, 형은 내가 없어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

  “⋯⋯.”

  “그래도 화 안 내고 용서해 줄게.”

 

  성당에 안 나간 지 꽤 됐는데 그래도 기도가 먹힐까. 용복은 걱정하면서도, 잠들기 전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기도했다. 민호가 자신보다 먼저 죽지 않기를. 민호의 계획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기를. 그래서 자신을 배신하려 했던 민호가 조금이나마 고통받기를. 그리고 그 고통이 점점 옅어져서 나중에는 완전히 자신을 잊어버리기를. 단 하나, 이정훈의 고통만은 자신이 이뤄 줄 테니.

 

  준비는 간단했다. 그간 병원에 다녔던 진료 기록을 모조리 뽑았다. 비록 자신이 먹던 약과 민호가 먹였던 약은 다른 종류였지만, 다른 루트로 약을 구입해 왔다는 증거만 만들어 놓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 것쯤은 용복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민호가 십여 년 동안 아등바등 쌓아올린 것들이 용복에게는 문자 몇 통으로 해결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용복은 그게 내심 미안해졌다. 지금이라도 당장 민호의 뺨을 만져 주고 싶을 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진단서와 각종 서류들, 가짜 약 구매 내역 따위를 모두 민호에게 보낼 준비를 마쳐 두고, 용복은 민호와 마지막 생일을 함께했다. 이민호가 좋아하는 것들을 눈으로, 몸으로 꼭꼭 담아두려고 애썼다. 역한 냄새가 나는 음식도 꼭꼭 씹어 삼켰다. 민호가 좋아하는 거니까. 늘상 보던 한강에서 새로운 걸 찾으려 애썼다. 민호가 좋아하는 공간이니까. 이 모든 것들을 끝내 사랑한 채로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것, 이민호를 현관 밖으로 밀어낸 뒤, 용복은 비타민 젤리를 가져왔다. 민호가 꼭꼭 숨겨 놓은 여분의 약물도. 젤리를 하나하나 꼭꼭 씹으며 민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얼마나 살고 싶게 만들었는지, 또 나를 얼마나 진창에 처박았는지. 과잉된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마지막에는 한 문장이 남았다. 사랑해. 한 번도 들려 준 적 없는 간지러운 말.

 

  몽롱해지는 정신으로 녹음 버튼을 눌렀다.

 

  민호 형,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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