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호는 1998년 10월 25일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태어났다. 생긴 것만 보면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랐을 것 같지만, 이민호는 날 때부터 홀로서기를 욕망했다. 보호자의 동행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유년기 때는 어른들이 하는 일을 흉내 내기를 좋아했고, 몸도 크고 대가리도 클 무렵에, 그러니까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넘어갈 무렵 아르바이트에 눈을 떴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나? 아니. 그럼, 부모님이 내놓은 자식이냐? 그것도 아니. 이민호의 부모는 이민호가 무엇을 하든 관심 없었다. 고깃집에서 불을 나르다가 화상을 입어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만 아주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다. 눈치. 그 눈치가 달갑지 않아서 되레 센 척을 했다. 괜찮다고. 이민호 성격이 그랬다. 아무도 굳세게 키우지 않았는데, 홀로 그렇게 자라났다. 말하자면 이민호는 야생화 같은 아이였다. 화려하고 반질반질한데 투박한 아이.
그도 그럴 것이, 이민호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나를 품어 준 고마운 사람들. 나를 키우느라 애쓰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고생 좀 하십시오. 이런 말은 생각도 안 해 봤고, 그 흔하다는 어버이날 카네이션도 준비해 본 적이 없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 놈은 이민호를 후레자식이라고 불렀다. 야, 이 정신 나간 새끼야. 그럴 거면 독립을 해. 그딴 생각으로 엄마 아빠 집에 눌어붙어서 살기 안 찝찝하냐?. 제정신 아닌 이민호는 그런 친구의 말에 딱 일주일 치 짐을 들고 서울로 가출하다시피 날았다. 물론 어질러진 방을 보고 부모에게 연락이 왔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이쯤 되니 이민호는 내가 저지른 불효와 부모의 무관심과 방임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관심을 갈구할 바엔 내가 포기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고, 평소에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얼굴 보고 인사도 안 하는데 나가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출가한 것뿐인데. 솔직히 본인 딴에는 복수였다. 회피밖에 모르는 이민호의 소심한 복수.
첫 번째 집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북향 원룸이었다. 원래라면 갓 상경한 놈들처럼 반지하로 끌려가게 됐겠지만, 이민호는 워크맨 버금가는 아르바이트 경력으로 모아둔 돈이 좀 있었다. 나한테 곁을 내어주지 않는 겉만 번지르르한 도시지만, 이민호는 어두컴컴한 작은 방이 마음에 들었다. 입주 날 낡은 옷장을 버릴 때 발견한 곰팡이 때를 보고 그래도 혼자는 아니네, 라고 생각했다면 분명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테이블도 없는 음습한 집에서 짜장면 하나 시켜 먹고 자면 그만이다.
이민호는 서울에서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했다. 단짠이 유행이던 시절에 일마저 단짠으로 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모델을, 해가 진 후에는 배달 일을. 낮에는 잠깐 셀럽으로 살다가 밤에는 헬멧 쓰고 8차선 도로 질주하며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는 놈에 불과했다. 모델 일은 어쩌다 알게 된 누나ー부동산 중개인인데 이민호한테 관심 보이다가 대차게 까인ー가 소개해 줬다. 나 키 작은데. 그럼 너한테 소개 안 해 줬지. 얼굴 모델 구하는 거더라. 아하, 뭔가 속상한데? 일단 알겠어. 면접 날 이민호는 꼴에 구색은 갖춰야 할 것 같아서 흰 셔츠에 넥타이, 슬랙스까지 세미 정장으로 입고 갔다. 디렉터는 이민호의 슈트 차림을 보고 반해버린 나머지 피팅 모델까지 겸해 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다. 이민호는 덤덤하게 고개 끄덕이고 속으로 개꿀이라고 생각했다. 따블로 준다잖아. 그렇게 이민호는 나름대로 수요 있는 모델이 되었다. 물론 배달 때문에 종종 잠 못 자 죽어가는 얼굴로 다녔지만, 그럴수록 스태프들은 상태에 맞는 콘셉트를 찾아주었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좋으면 장땡이지 따위의 사고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과로를 일삼는 이민호였다.
왜 몰랐을까. 기계는 오래 쓰면 닳고, 사람도 오래 쓰면 앓는다는 것을. 기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점점 닳고 자주 앓았다. 쓰러져도 스튜디오에서 쓰러지고, 죽어도 배달하다 죽어야지. 그래야 보험 되지. 될성부른 미친놈 이민호는 그날도 정시 출근했다가 메이크업 도중 기절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익숙한 에탄올 냄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지랑이인지, 천장 무늬인지 알 수 없는 저 물결 표시와 밝은 조명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이민호는 몸을 일으키려다 더 깊이 찔러대는 수액 바늘에 못 이겨 다시 누웠다. 당연하게도 응급실에는 저 혼자였다. 익숙하다. 뭐,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거야말로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형
나 두고
가지 마
아니야 그냥 가
미안해 내가
고개를 살짝 틀어 옆을 보니 대가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중얼거리는 걸 들어버려서 이민호는 자기 나름대로 상황 판단을 펼쳤다. 친형이랑 싸웠나. 아무리 남자 대 남자로 싸웠다고 해도 보통 동생을 저렇게 만들어 놓나. 그런데 이민호의 속마음을 대변하듯 소년은 달뜬 숨으로 다음 대사를 뱉어냈다.
사랑⋯⋯.
사랑? 그래, 친형 사랑할 수도 있지. 분명 이민호에게는 혈연에 의한 사랑으로 해석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열린 사람이고, 동시에 꽉 막힌 사람이라서. 로맨스는 관심 분야가 아닌데. 흥미가 식은 이민호는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눈을 감았다. 간호사든 의사든 와서 뭘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해야 할 것 아냐. 그냥 여기서 계속 누워 있으라는 거야, 뭐야. 슬슬 좀 쑤실 무렵 커튼이 걷히는 소리가 들렸고, 그게 제 커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옆 베드, 그러니까 자기 형과 「미안하다 사랑한다」 찍던 그 소년을 찾아온 것이다.
저기요, 여기 제가 더 일찍 왔는데요.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에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꾹 삼키고 소년의 처방이 떨어지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본의 아니게 관음증 환자가 된 이민호는 보지는 못했지만, 의사에 입에서 나온 소년의 이름을 듣고 터질 뻔한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민망한 척 기침했다. 어떻게 이름이 이용복이지. 저 어린놈 이름이. 재벌가인가? 재벌가는 이름도 우습게 짓던데. 잠깐이나마 저 소년이 재벌이라고 상상하니까 형과의 싸움이 권력 싸움 비슷한 것으로 다가와서 흥미롭긴 했다.
그래도 저놈, 말할 수 있는 것 보니까 죽을 지경은 아닌가 보다. 이민호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응급실에 누워있으면서 덜 심심하게 만들어 준 존재에게 감사 표현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입원 처방을 내렸고, 병동으로 올릴 준비를 했다. 의사가 커튼을 젖히고 이 공간을 벗어나려고 하자 이민호는 복식 호흡으로 저기요! 라고 했다. 당황한 간호사는 눈이 커진 채로 이민호를 들여다보았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네, 괜찮은데 이것 좀⋯⋯. 간호사는 그제야 다 들어간 수액을 확인했다. 주삿바늘을 제거하고 피가 멎을 때까지 3 분 정도 지혈하라고 했다.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난 이민호는 대충 걸터앉은 채로 제 팔뚝을 꾹 눌렀다. 옆자리 소년의 얼굴 전체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더 어려 보였다. 이 소년은 무슨 사연을 갖고 있을까. 세상에 별난 사연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혀를 끌끌 차며 알코올 솜을 버리고 고용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디렉터는 다행히 별 탈 없이 넘어갔다. 그저 괜찮냐고, 몸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이민호는 보이지도 않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수납 이미 해 주셨던데, 그건 이번 달 월급에서 까 주세요. 감사합니다. 예.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갈 수 없었다. 소년이 제 팔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팔을 흔들어 봐도, 뿌리쳐 봐도 계속 잡혔다. 조금 전까지 연민의 대상이었던 그는 곧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 봐도 다른 환자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제대로 듣지 않았다. 이민호는 이때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는 수 없이 이민호는 소년의 곁에 있었다. 어차피 곧 병동으로 올라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같이 있어 주면 될 터였다. 말도 없이 서 있으려니 더럽게 재미없었다. 혹시나 들릴까 싶어 아까처럼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고 중얼거렸더니 또 대답은 돌아왔다. 똑같은 이야기. 형, 나 두고 가지 마. 떠나지 마. 아니야, 가. 네가 무슨 지킬 앤 하이드냐. 하나만 해. 형이 너 이렇게 만든 거야?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보아하니 잠이 든 모양이었다. 제 손목에 수갑처럼 채워져 있던 소년의 손이 스르륵 풀렸다. 때마침 의료진이 들어왔고, 나는 소년의 주머니 속에 명함을 넣어두었다. 모델 명함이면 조금 더 간지 났으려나. 배달 명함이라서 아쉽긴 하네. 그리고 작게 읊조렸다. 양심 있으면 연락해라. 궁금해 죽겠으니까.
이변은 없었다. 며칠, 몇 주가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 같아도 응급실에서 본 사람 기억 안 날 것 같긴 해. 기억나도 인상적이진 않을 것 같긴 해. 이민호는 빛도 잘 안 들어오는 집에서 불도 안 켜고 제 명함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마침내 해답을 얻었다. 나 전화번호 바꿨는데 업데이트를 안 했네. 그놈이 자신에게 연락하려고 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민호는 쓸데없는 기대를 걸었다. 만약 하려고 했다면, 명함에 업체 이름하고 지점도 같이 봐주길. 전화 걸었는데 없는 번호 혹은 다른 사람의 번호면⋯⋯.
이민호는 그날부터 스튜디오보다 배달 업체로 출근하는 것을 더 기다렸다. 출근하자마자 실장에게 연락 온 것 없냐고 묻는 것이 정해진 루틴이었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넘어가는데, 일주일 내내 반복되니까 실장은 슬슬 궁금해졌는지 회사 명함 팔아다가 여자 만나고 다니냐며 비웃었다. 그럴 때마다 이민호는 보통의 남성 페르소나를 장착하고 실실 웃기나 했다. 겠냐. 양아치 새끼야. 콜 받을 준비 하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실장은 민호야 힘내라. 세상에 여자는 많다. 너 같이 생긴 놈이 뭐가 아쉬워서 회사 팔아다가 여자를 만나냐. 라고 지껄였다. 이민호는 듣는 둥 마는 둥 악셀 밟고 출발했다.
배달 일은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 번째는 온갖 음식 냄새를 맡으며 대리 만족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오토바이 타면서 드라이브를 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같이 상사의 병신 같은 발언 때문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인적 드문 곳에서 홀로 분노의 질주를 찍을 수도 있다. 저 새끼랑 일할 때마다 욕 나올 것 같아. 그냥 종이에 번호 적어주고 나올 걸, 왜 명함을 줬지? 이민호는 처음으로 후회라는 것을 했다. 그것도 잠깐 스쳐 지나간 어떤 소년 때문에.
퇴근할 때쯤 다시 업체로 돌아왔다. 근태 관련해서 작성할 것이 있어서 들린 것이다. 실장도 마침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앞에 벤틀리 있던데, 실장님 거예요? 들어오는 길에 조수석에 타 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실장은 시끄럽게 전화 중이라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들어가세요. 이민호도 고개만 까딱 인사했다. 매섭게 실장이 뒤를 돌아 이름을 불렀다.
야 민호야
네
내 책상 위에 쪽지 그거 가져가라 너는 동생이랑 연락도 안 하고 사냐?
이민호는 제가 동생이 있냐고 되물었다가 씹혔다. 돌아오는 건 딸랑거리는 출입문 종소리뿐. 실장 책상에는 대충 찢은 노트에 적힌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민호 동생’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쪽지를 주워들고 생각에 빠졌다. 설마 이게 그놈이라면.
그놈이라면 이민호 입장에서는 땡큐 베리 마치인데, 아니면 민망할 사실이었다. 친동생일 리는 없다. 왜냐하면 성인이 되어 출가하기 전까지도 외동이었고, 그때쯤이면 부모의 생식 능력이 마무리되는 시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가 몰래 숨겨 둔 동생이라면 더더욱 본인의 알 바가 아니다. 이민호는 집에 들어가서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 대신 문자를 남겼다. 쪽지도 족히 열 번은 다시 보았다. 실장 새끼가 글씨를 뭣 같이도 써 놓아서, 0인지 6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결국 찍어 맞추기식으로 0을 눌러 보냈다.
[안녕하세요 동생 님 연락받고 문자 드립니다 이민호입니다]
문자를 보내면 답장을 기다려야 하잖아. 또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어이없어서 허탈하게 웃었다. 매트리스에 엎드려서 시간 좀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은 여전히 문자에 머물렀다. 새로고침도 안 되는 것 계속 넘기다가 갑자기 뜬 알림에 놀라서 폰을 떨구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하루만 신세 져도 될까요?]
이건 예상치 못한 전개인데. 그놈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누구냐고 물었다. 수신자는 자신을 이용복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맞는 것 같은데. 목소리 들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그건 안 된단다. 수상쩍긴 하지만 어차피 남자고, 사정 딱해 보이니 이민호는 주소를 알려주고 앞에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만약 이용복을 사칭한 놈이거나, 혹은 여자라면 다시 돌려보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발신자는 이미 이민호의 집 앞이라고 했다. 창문으로 슬쩍 내려다보니 정말 누군가가 서 있긴 했다. 어떻게 찾아왔냐고 물으니 남자가 알려주었다고 했다. 실장 시발 새끼 내가 퇴사할 때 고소한다.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들었지만, 밖에서 멍하니 서 있는 사람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밖으로 나가 마중했다. 다행히 아는 얼굴이었다.
이용복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이민호는 눈치껏 왜 우는지를 묻기보다는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를 택했다. 응급실에서도, 문자로도, 마주하는 지금도 사정은 딱해 보인다. 아니, 딱한 것 그 이상으로 복잡해 보인다. 한숨보다 깊은 눈물이 조용히 자락을 드리웠다.
다 좋은데 왜 신발장에서 울고 있어
이민호는 가라앉은 울음을 듣고서야 마지못해 손을 뻗었다.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몰라 메트로놈을 틀어놓은 것처럼 박자에 맞춰 토닥였다. 야, 너 그 머리는 괜찮냐? 이용복은 입술을 꾹 깨물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된 건데? 형한테 맞았는데요. 응, 그런 줄 알았어. 형제 싸움 무서워서 살겠냐. 형제?
형제. 이용복은 그날 형제라는 말을 배웠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뜻으로 입력되었다. 보통의 형제라면 형과 아우를 동시에 아울러 이르는 말로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겠지만, 이용복에게 형제는 그날부터 서로 사랑하고, 사랑했고, 사랑할 남자였다. 이용복이 곱씹으며 형제라는 말이 좋다고 할 때 이민호는 주제를 돌렸다. 밥 먹었니.
뭐가 없는 냉장고를 털어 밥을 차렸다. 이용복은 그동안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불안 증세를 보였다. 내가 누구한테 연민 느낄 처지가 아니거든. 돈은 없어 보이니까 안 받을게. 그렇다고 무료 급식소라고 생각하진 마라. 이용복은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 차린 것이라고는 잡곡 햇반에 스팸, 그리고 대충 만든 계란찜뿐이었는데 잘도 먹었다. 사람은 역시 굶으면 속도 곯아버린다. 채워진 속에 미소 짓는 이용복에게 비로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할 말이 총 두 개거든. 중요한 이야기, 별로 안 중요한 이야기. 뭐부터 할래?
갈 곳이 여기밖에 없었어요
그래 보여. 중요한 이야기부터 하자 우선 없는 번호로 연락하게 해서 미안하고
저 신세 좀 질 수 있을까요?
나 누구랑 이야기하냐
이민호는 저놈의 머리통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내 얘기를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지. 빈 그릇을 싱크대에 집어넣었다. 때가 되면 알아서 불겠지. 지금은 그때가 아닌 것뿐이고. 그보다 잠은 잘 수 있겠어? 따위의 말로 화제를 돌렸다. 이용복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보다는 제스처가 익숙한 놈이었다. 이민호는 제 침대를 가리켰다. 저기서 먼저 자. 나는 늦게 자니까.
암전 상태에서 싸구려 전등의 정수리를 톡 건드렸다. 휴대폰 조명도 이것보단 밝을 텐데. 미세한 불빛은 효력이 없었고 어둠은 두 사람 사이의 틈을 메우듯 흘러들었다. 아무 말도 없던 방안에 미세한 숨소리만 내내 감돌았다. 늦게 잔다고 했던 이민호는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깔리지 않은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등을 돌려 누운 채로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누군가를 들인 것이 처음이라서. 그것도 이딴 식으로. 그때 이용복이 이민호를 불렀다. 형. 이민호는 여전히 돌아누운 채로 작게 읊조렸다. 왜. 진짜로, 아무것도 안 물어요? 뭘 물어. 사실 묻고 싶은 건 많았다. 이놈이 왜 도망친 건지, 왜 형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지, 왜 나를 붙잡았는지, 왜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지. 이민호는 명함을 주면서 일을 저질러 놓고 또 회피하기 일쑤였다.
이용복이 말했다. 저는 아주 많이 좋아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제가 좋다면서 때리고, 욕하고⋯⋯. 그랬거든요. 그래도 좋아요. 그 사람은 절 때리고 나서 꼭 안아줬어요. 그럴 때마다 안정이 돼서. 이민호가 말했다. 씹새끼네. 이용복은 반문했다. 나빠요? 이민호는 반문했다. 형이라는 새끼가 그렇게 때렸어? 죽으라고? 그 말에 반응하듯, 침대 위에서는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민호는 사랑해 본 적도, 사랑받아 본 적도 없지만, 이상성욕과 폭력을 구분 짓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날 밤 이민호는 이용복에게 전반적인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형이라고 부른 놈이 사실은 친형이 아니라 애인이었다는 것도, 맞으면서 사랑했다는 것도, 대가리에 피 흘려서 응급실 실려 온 날이 자신의 생일이었다는 것도, 이민호를 붙잡은 이유는 애인과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연락한 이유도 자신을 받아줄까 궁금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지랄 같네. 사랑이 밥 먹여주냐. 무슨 사랑, 사랑, 사랑⋯⋯. 이민호는 나지막이 때려 박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해가 들지 않는 방 안에 불빛보다 먼저 깨어난 건 정적이었다. 이민호는 평소 출근하던 습관 때문에 주말인데도 일찍 눈을 떴지만, 이용복은 아직 자고 있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얕은 숨소리가 일정했다.
나는 너를 언제까지 이렇게 두어야 할까.
주방에서 물을 끓였다. 컵라면 두 개를 뜯어놓고 생각한 게 고작 이런 것이라니. 명함 줘 놓고, 연락하라고 해 놓고, 집에 들여놓고, 이제는 언제까지 받아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순간 자신이 쓰레기로 느껴져 싱크대를 붙잡고 골 아픈 소리를 냈다. 한숨도 땅이 꺼지라 푹푹 쉬어댔다. 내가 볼 땐 결핍이야. 나도 곁에 남은 사람 온기가 그리웠나 봐. 불편하게.
이용복이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와 잔뜩 부은 눈을 하고선 처음으로 하는 말이 오늘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오래 있으면 실례잖아요. 이민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꼴이 정말 누군가를 떠나 본 사람 같았다. 버려지는 게 익숙한 사람. 버리는 게 익숙한 사람.
갈 데는 있고?
아니요 하지만 있겠죠
끓는 소리와 함께 물김이 피어올랐다. 입가에 띈 옅은 미소를 유지한 채 말없이 물을 부었다. 이용복에게 젓가락을 내밀었다. 그 또한 말없이 젓가락을 받아들었다. 작은 상에 마주 보고 앉아서 라면을 먹었다.
형
왜
나를 누구로 생각해요?
동생, 손님, 불쌍한 놈. 애매한 무언가가 목구멍을 헤매다 이내 삼켜졌다.
용복아
⋯⋯.
형제라는 말이 좋다고 했었지
이용복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냥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있고 심심하지 않을 정도 딱 그 정도면 돼
이것은 가장 부드럽고, 가장 애매한 방식의 동의였다.
그날 밤, 둘은 나란히 앉아 오래된 드라마 재방송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대사도 허술했고, 영상은 오래됐고, 재미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온전했다. 아마도 화면 속에서 그 누구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민호는 홀로 생각했다. 그런 드라마가 지루했는지, 혹은 졸렸는지 이용복은 졸다가 목을 꺾었다. 이민호는 그런 모습이 우스워서 리모컨을 들어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먼저 자.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이 작은 집에서, 불편하지만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이용복은 눈을 끔뻑이다가 자연스럽게 침대로 올라갔다. 어쩌다 보니 침대는 이용복의 몫이 되었다.
이민호는 홀로 TV를 틀어두고 넋 놓았다. 창밖엔 비가 그쳤고, 이따금 창문에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뉴스로 보는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혼잡하고, 복잡했다. 오로지 이 작은 집만 조용한 것 같았다.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조용해도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처음 해 보았다. 누군가의 사연을 전부 알지 못해도, 굳이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덜 시끄러워지는 밤. 답지 않게 많아진 생각에 소스라치며 TV를 꺼버리고 몸을 웅크렸다. 그 순간 이용복은 잠결에 뱉는 건지, 안 자는 건지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듣지 않으려고 했는데.
23:57
10 월 24 일
달력상으로 곧 생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축하받는 일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기대한 적도 없었다. 챙긴 적도 없었다. 불도 꺼진 방에서, 이불 속의 작은 몸이 규칙적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이민호는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똑 딱 똑 딱
방안에서는 시계 초침이 요란하게 작동했고
민호 형 고마워
00:00
10 월 25 일
케이크도, 촛불도, 축하도 없었지만, 이민호는 처음으로 아주 조용히 자신의 생일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자신을 고요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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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말이 없어 내가 우는 걸 봤을 때도 이유를 묻지 않았어 그냥 기다려 줬어 이 사람은 날 밀어내지 않아 형은 여전히 조용하지만 밥을 차릴 땐 항상 말을 아끼고 일을 나갈 땐 다녀올게 같은 말도 안 하지만 꼭 물 한 병을 두고 가 밥을 차려놓고 가 처음 알았어 말을 안 한다고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가끔은 무서웠어 언젠가 여기서 나가야 할까 봐 나는 아직 무서운데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형이랑 아무 일 없이 지내는 게 □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인데 형이 언젠가 나한테 이제 그만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아무 일도 없는 게 좋을 줄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 쉬는 것 같으니까 몰랐는데 오늘은 형 생일이었어 카카오톡에 떠서 알았어 자기 생일까지 말 안 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긴 빛도 안 들고 조명도 이상하고 형도 나도 상처투성이지만 올해 생일은 내가 먼저 축하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