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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f

애정의 증명

 

​​

“형 많이 아파?”

 

  병원에선 약품냄새보다 역한 피냄새가 진동했다. 응. 이민호는 욱신거리는 어깨뼈를 잡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어깻죽지에 붕대를 칭칭 감아서는 겉까지 피가 새는 게 보였다. 가만히 있어도 경련하듯 어깨가 떨려왔다. 억지로 맞춘듯이 삐걱대며 근육을 찌르는 바람에 이를 빠득 갈았다. 필릭스는 그런 모습을 보면 지구 끝까지 추락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형, 나 때문에 가이딩 피하지 않아도 돼. 지도 얼굴 반쪽 갈려서 붕대 감은 주제에 남 걱정을 다 한다.

 

  “괜찮아.”

  “⋯.”

  “나 진짜 괜찮다니깐.”

 

  이민호는 천천히 입을 뗀다. 신경마취주사를 두 대나 맞았음에도 아픔은 멈출 줄 몰랐고 말할때마다 입술이 발발 떨리는 바람에 입을 다무는 걸 선택했다. 필릭스는 고개를 찬찬히 떨군다. 릭스야 나 진짜 괜찮아. 현장에서 가장 선두를 맡는 필릭스. 능력도 기술도 탑 찍고 정부에서 인정까지 받은 센티넬이라지만 이민호 눈엔 아니었다. 걔 맨날 임무 나갔다 오면 잠 못자. 사람 죽여서. 개미새끼 하나 못 죽이는 애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 수면제 먹고 자도 끙끙거려. 걔는 그런 애야. 천성이 너무 착한 애야. 이 일과는 안맞아. 이민호는 전에 그렇게 말했던게 기억났다. 가장 앞을 내딛는 필릭스. 가장 먼저 사람을 죽이는 필릭스. 모든걸 감내하고 밤마다 잠을 설치는 필릭스. 그순간 공격이 떨어졌다. 옆으로 비껴가는 화염들을 피하다 기어코 필릭스와 눈이 마주쳤다. 이민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미안해.”

 

  너가 미안해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멋대로 대형 이탈한건데. 말짱한 오른손을 들어올려 필릭스의 머리카락을 따라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개 아래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민호는 뒤통수를 감싸 제 가슴팍에 기대게 했다. 눈물로 옷이 다 젖는다. 필릭스는 숨죽여 울 뿐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필릭스가 진정될때까지 이민호는 옆에서 염불하듯 위로했다.

 

  나의 센티넬. 나의 여름. 나의 필릭스.

 

  너는 너무 착하다.

​애정의 증명

  필릭스는 무너져가는 판자촌에서 발견됐다. 판자촌 철거를 위해 정찰을 나갔던 이민호에게. 두텁게 덧칠된 철문을 뜯으니 주변 물건들은 공중에서 부양하고 있었으며 거기서 두려움과 추위에 벌벌 떨던 소년은 목에는 개목걸이를 하고 3m 채 안되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게 필릭스였다. 햇빛도 안드는 2평짜리 공간에 갇혀 곰팡이 핀 빵을 먹으며.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당하며 학대를 당했음에도.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시궁창 인생을 살았으면서도 이민호가 목줄을 끊어주자 안기는 것처럼. 필릭스는 착했다. 너무나도 착했다.

 

  시설에서 간단한 검사를 마친 필릭스는 제 5센터에서 지내게 됐다. 이민호가 같은 센터에서. 나중에 관계자에게 듣기를, 콕 집어서 제가 있는 곳으로 가고싶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나를 구해준 사람. 그 사람이랑 같은 곳으로 보내주세요, 라고. 그때는 내심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다.

 

  필릭스는 재능이 차고 넘쳤다. 들어온지 몇주만에 부대 선두를 맡았고 머리도 좋아서 지략도 잘 세웠다. 아마 필릭스가 2%라도 착하지 않았다면 나라가 불바다가 됐을지도 모르지, 이민호는 가끔 그렇게 농담했다. 그러므로 필릭스는 전담 가이드도 있었다. 필릭스와 똑같이, 들어온지 네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리숙한 가이드. 분명 둘만 있을땐 안기도, 입을 맞추기도, 나체로 침대에서 나뒹굴기도 하겠지. 이민호는 그게 센티넬과 가이드의 운명인 걸 알면서도 속이 울렁거리는걸 참을 수 없었다. 둘이 붙어있는 걸 볼 때면, 소근소근 귓속말로 킥킥대는 모습을 보면, 그럴 때면 저 내장 끝에서부터 엉키는 느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민호는 그저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훈련을 너무 많이 해서라고 얼버무렸다. 더 이상의 감정은 사치였다.

 

  필릭스의 가이드가 죽었다. 현장에서 불가피한 사고로. 그 소식을 들은 건 일이 있고 난 후 이틀이나 지나서였다. 필릭스는 전보다 조금 말랐다. 전보다 조금 더 무표정이었고 방에만 처박혀 나오질 않았다. 민호 씨가 가서 봐주시면 안돼요? 필릭스씨, 민호 씨를 잘 따랐잖아. 계획에 차질이 생긴 연구원들의 등살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방 문 앞에 섰다. 똑 똑 똑. 조용한 복도에 철문 두드리는 소리만 울렸다. 쇠구슬 굴러가는 듯 차가운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너 괜찮아? 이민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이 열렸다. 또 엉망인 머리를 하고 눈은 퀭해서. 지금의 필릭스는 처음 만났던 날을 상기시켰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필릭스도 이민호도. 그저 필릭스는 침대에 걸터앉고 이민호는 구석에 처박혀있던 의자를 끌고 와 필릭스 앞에 앉았다. 필릭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다 나 때문이에요.”

  “⋯.”

  “내가⋯ 그때 후방으로 빠지지만 않았더라면⋯. 걔는⋯.”

  “네 잘못 아니야.”

  뒤로 젖혔던 상체를 앞으로 끌고 온다. 필릭스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저를 쳐다본다. 틱틱. 손톱을 뜯어내던 필릭스의 손을 잡았다. 나는 네가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살아남았으니까. 이 지옥에 더 남게됐으니까.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건 천국에 가서 하자. 필릭스는 운다. 무표정인 채로 저를 쳐다보며 울다가, 일그러지며 고개를 숙인다. 맞잡은 손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민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그냥 토닥여줄 뿐이었다.

​​

  필릭스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었다. 이민호가 대차게 달래준 끝에 훌쩍거리며 잠들었다. 뻘겋게 짓무른 눈가를 손으로 매만졌다. 이민호는 생각했다. 자신이 죽어도 이렇게 울어줄까, 하고.

​​

​​

​​

  어깨는 며칠만에 나았다. 나은 건 아니고 피가 아물었다. 아직 움직임도 불편했고 크게 휘두르면 고통에 악바리칠 거 같았지만 필릭스가 너무 걱정하는 티를 내서 반깁스는 금방 풀었다. 아파도 필릭스 앞에서는 안 아픈 척 연기했다. 연기대상감이었다.

  필릭스는 임무가 많아졌다. 자기 몫과 이민호 몫까지 혼자 해냈다. 필릭스와 눈 맞추고 대화하는 날이 나날이 줄어갔다. 간간이 소식만 들려올 뿐이었다.

  여느때처럼 오전 업무를 처리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연구원들과 의료진에 물음표를 띄웠다. 땅이 울리도록 뛰어다니는 의료진들. 손에 빼곡히 들린 무거운 서류를 옮기는 연구원들. 무슨 일이 생겼음이 틀림없는 상황에서 이민호는 일종의 괴이를 느꼈다. 아마 이 움직임의 끝은 필릭스일 것임을.

  “뭔 일 났어요?”

  “말도 마. 현장에 나갔다가 센티넬 하나가 만신창이가되어 와서. 지금 혈액 부족하고 난리야. 필릭스씨는 왜 하필 가이드 매칭을 거부해서는⋯. 아.”

  연구원은 말을 끊고 이민호를 바라봤다. 이민호와 필릭스가 각별한 사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아 그게, 생각보다 별로 안심해. 알지? 센티넬들 목숨 하나 끊질기잖아. 얼버무리는 연구원 앞에 무표정의 이민호가 있었다. 필릭스. 필릭스. 그의 이름을 나지막히 부르는 환청과 사이렌 소리가 섞이며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사이렌 소리조차 환청일지도 몰랐다. 엥엥 울리는 소리에 맞춰 뜀박질했다.

  천조각으로 칸막이 쳐진 응급실. 깜깜한 응급실 안에 전등 하나만 꺼지지 않고 빛나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삑삑거리는 감시장치 소리가 퍽이나 낯설었다. 블라인드를 들추자 거기엔 피떡이 된 필릭스가 있었다. 예상한 일이고, 우려하던 일이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숨이고 뭐고 목부터 막혀왔다.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호흡하는 필릭스. 덕지덕지 붙어있는 거즈들.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치우니 만신창이가 된 필릭스가 눈에 보였다. 반사적으로 걔의 가슴에 귀를 붙였다. 쿵. 쿵. 쿵. 낮지만 심장은 뛰고 있었다. 아아. 다행이다.

  이튿날 필릭스는 눈을 떴다. 눈 뜨자마자 부르짖던 건 제 이름이라고 했다. 심각한 부상에 제 몸조차 제대로 못가누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이민호를 찾으러가려는 통에 막느라 의료진들이 고생했다고. 형, 형. 민호형. 형. 누가 형 좀 불러줘요. 제발. 형. 민호형. 그렇게 애타게 불러댔다고 했다.

  이민호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필릭스는 왈칵 안겨들었다. 엉엉 울면서. 필릭스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건 오랜만이었다.

  “형, 형. 흑. 민호혀엉.”

  “나 여깄어. 릭스야. 나 여기있어.”

  이름 석 자 닳도록 불러도 이민호는 거기다 하나하나 대답해줬다. 릭스야. 나 여기 있어. 형 여기 있어. 엉망으로 안겨든 필릭스를 들쳐매고 침대에 눕혔다. 필릭스는, 바쁜 응급실의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울다가 또다시 전등 하나만이 우리를 비출 때서야 뚝 그쳤다. 그럼에도 맞붙잡은 손은 놔주지 않았다.

  “그래서. 왜 그렇게 엉엉 운거야.”

  “⋯형이.”

  “⋯⋯.”

  “⋯⋯.”

  필릭스는 입만 뻥끗거릴 뿐 말을 잇지 못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 윗대가리들이 아프게 했어? 내가 다 죽여줄까? 한 손으로 주먹을 쥐며 때리는 시늉을 하니 필릭스는 헤헤, 하고 웃었다.

  나,

  형이 죽는 꿈을 꿨어.

  형이 잔인하게 죽는 꿈. 임무를 나갔다가 시체로 돌아오는 꿈.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멈추지 않아서 끈적거리는 형을 내가 안았어. 꽉 안고 불렀어. 민호형, 민호형, 하고. 꿈 속에서 형은 너무 차가웠어. 차가운데 피는 너무 뜨거웠어. 너무 진짜 같아서. 꿈에서 깼는데도 형이 죽었을까 봐. 근데, 근데 형한테 안기니까, 그제서야 괜찮아졌어. 형이 너무 따뜻해서.

  그 말에 이민호는 피식, 웃었다. 형은 내가 걱정하는데 웃겨? 삐진 투로 툴툴거리는 필릭스때문에 이민호는 곱절 더 크게 웃었다. 만신창이 피칠갑이 되어서 온 건 필릭스 자신이었으면서, 이민호가 죽었을까 두려워 울었다는 모순이 너무 웃겼다.

  “알았어, 알았어. 나 그만 웃을게.”

  “형 진짜 나빠.”

  “나 니 허락 없이는 안 죽을게.”

  약속해. 이민호는 새끼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필릭스는 멍하니 그것을 보다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맺었다. 꼭이야. 죽지마, 형. 이민호는 또 웃어버렸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필릭스의 눈이 웃겼기 때문이었다.

  “그럴게. 그니까 너도.”

  “?”

  “너도 죽지마.”

  죽으면, 난 아마 살지 못할 거 같아.

  필릭스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복귀했다. 소장은 가이드가 있었으면 더 빨리 복귀할 수 있었을 거라며 필릭스를 나무랐다. 그럼에도 필릭스의 의지는 확고했다.

  언제 한번은, 왜 가이드를 두지 않느냐며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필릭스가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몇달간 다리를 절며 다녔을 때였다. 넌 선두이기도 하고, 임무도 자주 나가잖아. 약물 치료는 한계가 있어. 가이드 치료가 얼마나 좋은지 알잖아.

  “별로.”

  “귓구녕 열려있긴 한거지?”

  “형도…. 가이드 없이 혼자 다니잖아.”

  그 말에 약간 뜨끔하긴 했다. 이민호가 가이드를 두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기였다. 자신은 그런 불순하고 더러운 일 없이도 잘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 이유로 지금까지 온 매칭을 모두 거부했다. 난 저렇게 살지 않을거야. 여기서 나간다면 떳떳하게 살래. 물론 사람 여럿 죽인 판에 이제서야 내빼는 건 큰 역설이었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아무리 무너져내려도 지키고 싶은 이민호만의 신념이었다.

  “설마 저번 일 때문이야?”

  “⋯아니야.”

  “그럼 뭔데.”

  “⋯형이.”

  “⋯⋯.”

  “형이 나 가이딩 받을 때마다 뚫어져라 쳐다보잖아.”

  ⋯아. 이민호는 짧게 탄식했다. 내가, 그랬나? 돌이켜 보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필릭스가 가이딩 받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이상했으니까. 이민호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지금 상황만 보면 아주 조금 질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필릭스는 자주 아픈 건 아니었지만 한번 감기에 든다거나 그러면 크게 아픈 편이었다. 오늘도 훈련을 다녀오더니만 어디서 감기에 걸려서는 열이 38도를 웃돌았다. 약을 처방받아 한번에 삼키더니 침대에 누웠다. 그 옆을 지키는 건 다름없이 이민호였다. 의자를 침대와 가장 가깝게 붙인 채 책을 읽었다. 형. 혀엉. 필릭스는 코 찔찔이 목소리로 애타게 불러댔다. 왜. 또. 뭐.

  “손⋯ 잡아줘.”

  필릭스는 유난히 손 잡는 걸 좋아했다. 같이 다닐때도, 쉴 때도, 필릭스는 어느 행동보다 손 잡는 걸 좋아했다. 이민호는 할 수 없이 책을 내려놓았다. 아직 반 페이지도 못 읽어서 아쉬웠지만 눈빛 초롱하게 쳐다보는 통에 거절할 수 없었다. 손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이제 됐어?

  “⋯웅.”

  “편하게 자. 나 어디 안 가니까.”

  또 저번처럼 울면서 나 찾으면 안된다. 형 진짜 못됐어. 지난 일에 화들짝 놀라 필릭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부끄러운지 이불 밑으로 얼굴을 가린다. 릭스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형이 백 번 천 번 잘못함. 얼굴 보여주라. 응? 살살 구슬리며 손등을 쓸어주니 마지못해 고개를 빼꼼 내민다.

  새벽 2시. 자지 않기로 그렇게 다짐했다만 새벽이니 졸음이 몰려오는건 인간의 이치였다. 눈알을 굴리고 하품을 해도 졸음이 깨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필릭스는 곤히 잘 뿐이었다. 꾸벅꾸벅 조니 필릭스가 손을 막 흔들길래 졸린 투로 왜, 하고 말했다. 형 졸려?

  “엉. 나 어제도 철야였어.”

  “나 추운데.”

  “난방 올려줄까.”

  “형이 누워서 나 좀 안아주면 안 돼?”

  이불을 들추고 필릭스 옆에 누웠다. 필릭스는 이민호의 품으로 쑤시고 들어온다. 품에 안긴 필릭스가 영 앙상하다. 제 품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다. 열이 나는지 필릭스 몸 전체가 뜨거운 핫팩같았다.

  “약 더 가져다 줄까?”

  “괜찮아.”

  “⋯.”

  형이 안아주니까 다 나은 거 같아. 코는 맹맹해서 목소리로 잘도 괜찮다며 말했다. 필릭스 얼굴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줬다. 너 덥지, 나한테 앵길라고 거짓말 한거지. 필릭스는 기침으로 무마했다.

  “형이 내 가이드였으면 좋겠다.”

  품에 고개를 파묻은 채 필릭스는 웅얼거렸다. 형이 내 가이드였으면 좋았을텐데. 그럼 나 맨날 형 끼구 다녔을거야. 형은 강하니까 쉽게 안죽을 거 같애. 가래 때문에 걸걸한 목소리가 더 걸걸해졌다. 이민호는 필릭스를 더 꽉 껴안았다.

  “나도.”

  “⋯⋯.”

  “가끔은 내가 가이드였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네 가이드가 될게. 그래서 널 아프게 하는것쯤이야 다 없앨 거야. 너를 아프게 하는 것, 힘들게 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모두를 너를 위해 없앨게. 지금의 나는 널 아프게 하는 것조차 없애지 못해. 그런 내가 혐오감이 들 때마다 널 이렇게 꽉 껴안는 상상을 해. 이러면 아프지 않거든. 나는 너를. 그정도로 아껴.

  “안 자고 뭐해.”

  “잠이 안 와.”

  필릭스는 뜬 눈으로 밖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다크서클은 진하게 내려와 있으면서 잠을 못 잤다.

  “또 꿈 꿨어?”

  “응.”

  “수면제는? 먹었어?”

  “응. 효과 없어.”

  필릭스는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을 쓸었다. 아직도 내 손이 축축한 거 같아. 역한 냄새가 진동해. 씻어도 지워지지 않아. 토할 거 같아. 졸려서 비몽사몽으로 얘기하는 필릭스를 지탱했다.

  “형, 발목이 아파.”

  “삐었어?”

  “응. 아까 전투하다가.”

  바지를 들어내니 주먹만하게 부어오른 혹이 보였다. 부목이라도 덧대줄까? 이민호의 물음의 필릭스는 자신보다 아래에 앉아 발목을 관찰하는 이민호의 정수리를 콕 찌르고는 응, 이라고 답했다.

  “릭스야.”

  “⋯⋯.”

  “우리 여기서 나가면 따뜻한 나라로 가자.”

  필릭스 발목에 부목을 둘렀다. 잔뜩 부어오른 발목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대뜸 멀리 떠나자는 고백에 필릭스도 적지않게 당황한 티를 냈다. 어디로? 얼마나 멀리?

  “어디든. 너가 원하는 곳으로.”

  필릭스는 헤헤 웃었다. 그럼 호주는 어때? 내 고향이야. 내 두번째 고향. 거기는 엄청 따뜻하고 날씨가 좋아. 아니면 다른 곳도 좋아. 세계여행을 하며 지내자. 난 형만 있으면 돼. 신나서 떠드는 필릭스에 이민호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살아서 나가면, 꼭 가자.”

  “응. 꼭 가자.”

  현장은 참혹하게도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제 1부대 전멸, 제 3부대 전멸, 특공부대 거동 불가능. 시트에는 여러 부대가 열거되어 있었고 안타깝게도 모두 죽었다. 그럼에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순간에도 공격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이민호의 부대도 전멸 직전이었다. 다행인 건 필릭스가 있었다. 필릭스 혼자 3인분, 4인분, 아니 5인분의 일까지 해냈다.

  필릭스는 지쳐 있었다. 장시간의 전투와 체력과 정신력 갉아먹어가며 쓴 이능력들이 점점 필릭스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 아. 눈 앞이 흐려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이었을까. 시야가 좁아졌다. 그래서, 그래서 옆에 건물이 쓰러지는 걸 보지 못했다.

  쿵!

  큰 소리에 필릭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죽는 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필릭스는 숨을 더 크게 쉬었다. 멀리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야! 필릭스! 눈 떠봐!!

  “⋯민호형?”

  부름의 종착지는, 건물의 잔해를 뒤집어 쓴 이민호였다. 필릭스는 죽지 못했다. 눈이 핑 돌 뿐 심장은 아직 쿵쿵 뛰고 있었다.

  “안 다쳤어?”

  “어⋯.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봐.”

  온몸이 피투성이다. 옆구리에 뚫린 상처는 피를 울컥 토해내는 중이었다. 언제 공격 당한지도 모르는 상처였다. 이민호는 입고 있던 윗옷의 팔 밑단을 찢었다. 괜찮아. 이걸로 지혈해. 찢은 천을 상처 위로 꾹 눌렀다. 하얀색 셔츠가 붉게 물들었다. 상처를 댄 부분이 뜨거워졌다. 형. 다른 사람들은? ⋯. 이민호는 말이 없었다. 말 없이 그의 상처를 지혈할 뿐이었다.

  “우리 부대 사람들은 살았어?”

  “⋯⋯.”

  “⋯⋯.”

  “⋯⋯.”

  “죽었구나.”

  필릭스는 하늘을 바라봤다. 건물 잔해 때문에 맑은 하늘은 개뿔 꽉 막힌 콘크리트 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 5부대. 전멸. 시트 위에는 이렇게 기록될 것이다. 시트 위로 피가 뚝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이민호도 피가 났다. 머리를 후두려 맞아서 그런지 이마를 타고 핏줄기가 하강하고 있었다.

  “걱정 마. 내가 시설에 구조요청을 했어.”

  “형.”

  “살 수 있어. 괜찮아.”

  “형.”

  “가서 치료 받으면 돼. 그러면 이 상처도,”

  “형!”

  이민호도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큰 굉음 소리 덕분에 청력이 어느정도 마비된 탓이었다. 필릭스는 이민호의 손을 잡았다. 상처를 쥐고 있던 탓에 손이 전부 피로 범벅이 됐다.

  “우리 떠나자.”

  “⋯⋯.”

  “우리 같이 도망가자.”

  더 이상 우리를 찾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나도, 형도, 우리 부대도. 그러니까 우리 도망가자.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더이상 악몽을 꾸지 않는 곳으로. 난 알고 있어, 형. 형도 밤마다 악몽을 꾸는 걸. 형도 죄책감이란 걸 가지고 있다는 걸. 그니까 우리 떠나자. 따뜻한 곳으로. 거기서 우리가 죽인 모든 것에게 용서를 구하자.

  이민호는 까먹고 있었다. 필릭스가 얼마나 대담한지를. 이민호는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눈가를 더럽히던 핏줄기를 손으로 훔쳤다. 그렇지. 너는 모든 혐오를 뛰어넘어 사람을 사랑하는 아이니까. 이민호는 씩 웃었다. 필릭스도 더러 웃었다.

  해가 뜨면 가장 따뜻한 나라로 가자.

  디어 필릭스.

  서프라이즈.

  놀랐지? 우리 오늘 호주로 도망쳐 온 지 어언 2년째야.

  네가 없는 틈을 타 편지를 적어본다.

  너한테 들키면 놀릴 게 뻔하니까.

  사실 우리가 있던 곳은 말이야.

  개미 한마리, 꺾인 풀 하나에 슬퍼하는 네가 올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모든 걸 사랑하는 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곳이라고.

  넌 천성이 그랬으니까.

  네가 도망치자 말했을때, 나는 솔직히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어.

  너는 피칠갑에 피 찔찔 흘리고 있고.

  난 머리를 다쳐서 세상이 빙글빙글 돌던 중이었거든.

  근데 그게 다행인 거 같아. 머리를 다친 게.

  그래서 널 따라 도망칠 수 있던 거 같아.

  여기와서 앞마당에 시신이 없는 작은 무덤을 만들고 우리가 죽인 모든 것에게 기도를 올리는 너를 봤을 땐 이해가 안 됐었는데, 지금 보니 안 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해진 거 같아 고마워.

  난 여름마다 너와 둘이서 바다에 가는 상상을 해.

  이번 여름엔 바다를 가자.

  난 수영을 못하지만, 뭐 너랑 같이 가면 재밌을 거 같기도 해.

  나와 도망쳐줘서 고마워.

  이만 줄여야겠다.

  마트에 간 너가 돌아올 시간이 다 됐거든(ㅋㅋ)

  추신. 이 편지를 읽는 즉시 나에게 와 안겨라.

  ー사랑을 담아, 이민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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