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복아, 너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나는⋯ 별.”
별. 스타.
이민호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게 성공한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정도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용복이 원하는 것은 그런 휘황찬란한 직업이 아니었고 정말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다는 의미였다. 이민호는 그날부터 우주 비행사라는 꿈을 가졌다.
네가 별이 된다면 나는 별을 지키는 사람이 될게.
143: Into Silence
1.
민호가 초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부모님은 민호보다 두 살 어린 아이를 입양했다. 고아원에서 사용하던 이름인 ‘용복’을 그대로 가져와 이용복이라 불렀다. 앞으로는 네가 맏이니까 동생 잘 챙겨 줘야 해.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용복의 첫인상이 썩 나쁜 건 아니었다. 강렬한 태양빛이 쏟아지는 호주에서 태어나 자란 날들이 있어서일까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했고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자주 웃었다. 상냥하고 귀여운 아이구나. 용복을 만난 이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이민호를 제외하고.
어른들의 모든 애정을 독차지하는 이용복이 싫었다. 너만 없으면 이 모든 관심은 다 내 것인데. 그래서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용복이 열심히 그린 그림을 방 어딘가에 숨기기도 하고, 이민호 본인이 집을 어지르고 용복의 짓이라고 죄를 덮어씌우기도 했다. 이용복이 사고뭉치가 된다면 부모님이 날 더 사랑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럼에도 이용복은 이민호의 계략 아래에서 도망가는 법이 없었다. 본인이 저지른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꾸중을 들었다. 되려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민호에게 살갑게 다가갔다. 이거 해 봤어? 저거 같이 할래? 졸졸 쫓아다니며 귀찮게 구는 이용복을 보며 세상에 이런 바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미워할 줄만 알았는데,
이용복이 이민호와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석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민호가 호모라는 소문이 돌았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도 몹쓸 성병에 걸려서라고. 감기 기운을 겨우 떨치고 등교한 민호의 책상에는 말로 담기 어려운 욕설이 가득했다. 교과서를 꺼내기 위해 사물함을 열었는데 글쎄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휴지 뭉치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혐오로 얼룩진 끔찍한 기억이다.
그때 이용복이 나타난 거다.
“누가 우리 형 괴롭혀?”
덩치도 조그마한 게 무슨 깡이라도 있는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큰소리를 쳤다. 사람은 때리면 안 된다고 단언하던 녀석이 화장실에서 걸레를 가지고 와서 이리저리 휘두르는데 엉성한 자세가 참 웃기면서도 고마웠다. 다행히 누구 하나 다치기 전에 선생님이 나타나서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한동안 미친 동생의 미친 형이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이슈가 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그날 이후로 이용복을 나보다 더 지극히 아꼈다.
2.
“너도 참 극성이다.”
이용복을 설득해서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로 데리고 왔다고 말하니 동기가 보인 반응이다.
“너 그러다 용복이 결혼하면 어쩔래.”
“결혼하면 결혼하는 거지.”
“쿨한 척 하는 거 보소. 너 이용복 결혼식에서 깽판 놓는다에 내가 백만 원을 건다.”
“결혼식이 뭐냐? 배우자 될 놈 뒷조사 다 해서 상견례 때 줄줄이 낭독해야지. 불상사 일어나지 않게 뿌리부터 뽑아야 돼.”
“이민호 진짜 최악이다. 최악.”
알딸딸한 술 기운을 핑계로 농담 삼아 뱉은 말이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이용복이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생각을 하면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워낙 착한 녀석이라 몸만 좋으면 홀랑 넘어갈 게 뻔했다. 이런 애를 꼬시다니.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용복의 배우자에게 죽빵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용복은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일 학년들이 있는 곳을 슬쩍 봤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저러니 혼자 두질 못하지.
화장실로 향하는 길에 본 민호는 박장대소하며 웃고 있었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기대어 이야기하기도 하고 팔을 자연스럽게 만지고 있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재미있대? 나랑 이야기할 때는 저렇게까지 크게 안 웃으면서. 용복은 혼자 아이처럼 툴툴댔다. 학과 단체 회식을 무려 사 차까지 달리는 동안에도 이용복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소개팅 나갈 생각은 없냐는 둥 불편한 질문이 쏟아지는 탓에 아주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지만 민호를 두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쓴 맛을 싫어하는 이용복은 술 한 모금 안 마시고도 분위기를 잘 맞췄다. 아마 타고난 붙임성 덕일 것이다. 슬슬 피곤하고 지쳐서 집 생각이 간절해질 때 민호도 백기를 들었다.
“그럼 다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예, 예.”
거나하게 취한 학생들이 드디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만취한 민호가 비틀거리길래 용복은 민호의 팔을 제 어깨에 걸쳐 급히 부축했다. 얼마나 마신 건지 알코올 냄새가 코를 시큰하게 찔렀다.
“가자, 예쁜이.”
민호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용복에게 말했다.
“뭐라는 거야…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맨정신이야.”
“뻥!”
“진짜라니까. 내 눈 봐, 멀쩡하잖아.”
그러면서 민호의 얼굴이 훅 다가오는 게 아닌가. 크고 맑은 눈이 내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용복은 화악 얼굴이 붉어졌다. 괜히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말을 돌렸다.
“바보⋯ 엄청 취했어. 가자.”
“귀여워.”
끙끙대며 휘청이는 민호를 일으키는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호가 머리를 자꾸 쓰다듬었다. 마음 속에 털실이 있다면 그게 꼭 제대로 엉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풀기 위해 애써도 계속 더 엉키기만 하는 털실.
형은 아마도 모르겠지. 내가 얼마나 형을 좋아하는지. 형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얼마나 복잡하게 만드는지⋯.
3ー1.
고요와 개척을 좋아하던 이민호는 긴 시간이 지나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별을 좋아하는 이용복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둘은 줄곧 함께 우주를 항해했다. 새로운 행성을 찾아 인간이 살 수 있을지 어떤 성분이 주를 이루는지 등 인류를 위한 막중한 임무였지만 함께였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민호와 이용복 a.k.a. 냥냥 팀은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하는 것으로 우주 비행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점수를 매기자면 백 점짜리 팀이었다.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기 전까지는 계속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다고.
우주선에 연료가 바닥이 난 건지 조종간이 통 말을 듣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우주 먼지 정도로 떠돌 것이 분명했기에 착지할 수 있는 곳을 급히 살폈다. 불시착으로 우주선은 부서져 파편이 흩어지고 깊은 흠집이 나긴 했지만 안에 탑승한 우리는 놀랍게도 멀쩡했다.
“민호, 어쩌지?”
용복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돌아갈 수 있을까?”
용복의 질문에 민호는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고
“돌아갈 거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공포에 휩싸인 이용복을 달래기 위해서. 사실 민호도 무서웠다. 낯선 곳으로, 그것도 이 커다란 우주에서 떨어졌으니 죽음은 예정된 일이라는 게 뻔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싶었다. 나의 곁에는 작은 천사가 있었으므로.
일단 해결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해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차례 배우고 익힌 덕분에 간단한 수리 정도는 혼자서도 거뜬하게 해낼 수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몇 번의 밤을 보낸 후 우주선은 본연의 형체를 찾아갔지만 우주복 속의 산소가 일주일 치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액체나 고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남은 탈출 수단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인데, 그마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간이침대에 누워 시간을 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어차피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모든 움직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런 민호와는 달리 용복은 이곳저곳 쏘다녔다. 슬픈 기색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
외출할 채비를 하는 용복에게 민호가 물었다.
“구경하러. 그거 알아? 여기에 유리를 닮은 돌이 있어.”
“지치지도 않니.”
“왜 지쳐?”
“우리 여기에서 죽을지도 몰라.”
“민호! 그게 무슨 소리야. 동료들이 우리를 구하러 올 거야.”
믿기 힘들 정도로 낙관적이다. 생각해 보니 이용복은 어릴 때부터 늘 그랬다. 어릴 적 학교에서 가까운 사람을 종이에 그리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이용복이었기에 이용복을 그렸다. 그림은 엉망이었다. 삐죽삐죽 고슴도치처럼 자라난 머리에, 살구색 크레파스로 피부를 채색하다 먼저 그린 검은색 주근깨가 번져 얼굴은 회색 시멘트 같았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용복은 햇살처럼 따뜻하게 웃어 주었다.
“머리카락이 꼭 고양이 같다. 귀여워. 나 고양이 닮았어? 귀를 요정처럼 그려 줬네! 고마워~ 민호 실력 완전 좋다.”
예상치도 못 한 칭찬을 마구 들으니 수줍어져서 괜히 뒤통수만 벅벅 긁었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볼 줄 아는 아이. 그게 이용복이다. 내게 없는 것을 지닌 그 아이. 나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그 아이.
당연히 우리를 구조하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응답이 없는 것을 보면 신호 밖 구역이라 그런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도 이 상황을 비참하게 여기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는 이용복이 있었고 지구에 두고 온 것들 중에 그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는 없었으니까. 사흘 정도 숨 쉴 수 있는 산소가 남았을 때, 이민호는 새로운 다짐을 했다.
민호는 며칠 누워서 잠깐 절망을 마주했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걸었다. 민호와 걷는 건 혼자 걷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정말이네.”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고리 모양의 돌을 주운 민호가 말했다.
“정말이지. 나 거짓말 안 해.”
“반지 같다. 결혼할래?”
민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꼭 프러포즈하는 사람처럼 자세를 취한다.
“아이, 진짜. 어이없어.”
“왜? 결혼이 뭐 어때서.”
“무슨 결혼이야아… 늦게 오는 사람 손목 백 대 맞기!”
용복은 괜히 부끄러워져서 우주선을 향해 후다닥 달렸다. 민호가 멀리서 “용복아~ 같이 가~”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눈을 꾹 감고 그냥 달렸다. 민호가 저런 식으로 장난을 치는 게 곤란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샤워를 마치고 상의를 모두 탈의한 채 나온 민호를 보면 눈을 둘 곳이 없었다. 그냥 형제지간이라면 아무렇지 않을 텐데 자꾸 수줍어지는 이유는 뭘까.
손목 백 대는 당연히 민호가 당첨이다. 살살 할게, 말하면서 다섯 대를 온 힘을 다해 때렸다. 나 놀린 게 미워서. 민호는 아프다며 엄살을 피우는데 아마 별로 아프지 않았을 거다. 민호의 손목에 비하면 내 손목은 절반만도 못했으니까. 벌을 준 대신 민호의 우주복을 정리해 주었다. 산소가 이틀 치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 우주복을 정리했다. 산소가 하루 치도 채 남지 않았다.
“민호.”
“응?”
“내가 없어도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마.”
“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그럼 외롭지 않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용복아?”
우주선 바닥에 앉아있던 민호가 벌떡 일어나서 우주복을 살핀다. 이용복의 산소가 내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괜찮아. 우주선에 있으면⋯.”
“우주선에 있는 산소도 내일이면 동이 날 거야.”
“⋯그럼 내 거 입어.”
“아니야, 민호. 때가 온 거야.”
때가 온 거야. 이용복은 내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그 손을 마주 잡았는데 얕게 떨고 있었다. 너, 무서우면서 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거야. 눈물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들이 엉겨붙었다.
시간을 돌이키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가장 오래 전으로. 이용복을 처음 만났을 때로. 못되게 굴지 말걸. 잘 부탁한다며 해사하게 미소 짓는 너를 품에 따뜻하게 안아줄걸. 나의 대단치도 않은 인생을 살겠다고 너를 뒤로한 모든 시간을 후회한다.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이 안 났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는데, 우리의 마지막이 이렇게나 절망적이어서는 안 되는데, 나는 아직 너에게⋯.
3ー2.
자꾸만 같이 죽겠다고, 우주복을 넘겨 주겠다는 민호를 겨우 달래서 재웠다. 퉁퉁 부은 채로 잠든 민호의 얼굴을 안쓰러웠다. 자기 전까지도 울었는지 예쁘고 곧은 속눈썹에도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달콤한 꿈을 꾸길 바라는 마음에 손바닥으로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는데 손가락 사이에 들어오는 민호의 머리카락들이 부드러워 기분 좋았다.
“고마워. 잘 자.”
조용히 귓가에 속삭이고 민호 이마에 짧게 입 맞췄다. 혹여라도 일어나서 나를 마주한다면 또 한바탕 사달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민호가 깨어나기 전에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우주복을 챙겨 우주선을 나섰다.
두렵지 않다고 이야기한다면 거짓말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 아닌가. 먼 나라 호주에서 아는 이 없이 살아갈 때 죽음을 기도한 게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그때도 먼 곳에 떨어지는 것이나 목을 매는 것은 무서웠다. 그렇게 여러 차례 다음 생이 오기를 그토록 바랐는데, 민호를 만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민호는 내가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만들었다. 초반에는 나에게 까칠하게 굴었지만 괜찮았다. 나는 외면보다 내면이 따뜻한 민호가 좋았으니까. 그래서 졸졸 쫓아다녔다. 귀찮을 법도 한데 민호는 언제까지나 내게 미소 지어 주었다. 민호는 그걸 기억할까? 나의 형, 떠올리면 마음이 아릴 정도로 다정한 사람.
쏟아질 것 같은 별들과 함께 걸었다. 우주선에서 아주 멀리, 민호가 찾을 수 없는 먼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었다. 아이러니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심정은 무엇일까. 항상 민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정작 죽을 때는 멀어지고 있다니.
사랑했다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라고 전해 주고 싶다. 그건 우주를 부양하는 먼지들처럼 당연한 것이라고.
그런 소망을 되뇌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4.
아침에 눈을 뜨고 마주한 공간에 이용복은 없었다.
용복이 남기고 간 흔적들만이 존재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게임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도 조르는 바람에 보드게임을 몇 판이나 가지고 온 건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마음관 달리 실력은 영 좋지 않아서 패배의 연속이었지만 한 번 이기는 것만으로도 오래 기뻐하곤 했지. 눈가가 휘어지도록 웃는 모습을 보면 내 승리가 아닌데도 덩달아 기뻐지곤 했다. 타인에게 햇살처럼 밝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 그게 이용복이었다.
이용복은 삶의 끝자락이니만큼 상실의 아픔보다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라고 그랬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 순이, 둥이, 도리… 그리고 용복이. 사랑하는 것들 중에서 네가 있는데 어찌 생각을 돌리라고 한 건지 그런 엉성함마저도 이용복다워서 눈물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용복이 네 소원대로 별이 되었겠네. 올려다본 우주 어딘가에 이용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외로움이 조금 덜했다.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바닥을 쓸고 인공 텃밭에 물을 주고 누가 발견해서 읽기나 할지 미지수인 리포트를 작성한다. 무력함에 패배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모든 것들이 버겁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황홀한 도시의 풍경과 시원하게 나부끼는 바람 같은 것쯤은 그래,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이가 없는 우주에는 희망이 없다.
근데 있잖아 보통 사람들은 다 부족함을 안고 살지 않니. 가령 부모님을 일찍이 여의거나 포기한 꿈 같은 거. 나는 네가 꼭 그것 같다. 내가 결코 쟁취하지 못할 행복, 나의 용복아. 너를 떠올리면 원망스러운 것들이 가득하다. 즐거움이나 희망만 가져도 부족할 너에게 슬픔이나 좌절 따위를 가르치다니 세상이 미운데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
뒤를 돌면 꼭 네가 있을 것 같은데 네가 활짝 웃으면서 무슨 꿈이라도 꾼 거냐고 얼굴이 왜 그리 울상이냐고 물을 것만 같은데 여전히
나는 혼자야 사랑하고 싶고 살아가고 싶다 네가 없는데 나는 둘 다 이뤄낼 수 없어 내 인생은 실패나 매한가지지 그래도 널 만난 거 하나는 행운이고 성공이야 지겹게도 길어지는 삶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곳에는 이용복이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눈을 감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