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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닝동

開花

  올해도 여름은 뜨거웠다. 아스팔트에서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가만히 보고있자니 서서히 머리가 어지러웠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아지랑이가 피는데, 도대체 자신은 언제 피어날 것인가? 한낮의 공상에 빠져있다 보면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들곤 하는 것이었다. 꽃은 물을 주면 피어오른다.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지랑이는 열을 주면 피어오르지. 그렇다면 이용복은? 무엇을 주어야만 개화할 수 있는 것일까. 서서히 흐릿해지는 정신으로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

 

  “이용복!”

  “형!”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면, 보이는 것은 저를 닮은 사랑하는 형. 조금 더 날렵한 눈매와 우뚝 솟아 베일 것만 같은 코, 새침한 입술이 자신과는 조금 다르지만 주변에선 다들 닮았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 형 이민호는 묘하게 비틀거리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기꺼이 어깨를 내어준다.

  “또 이러고 있었어? 너 이러다 더위 먹는다고.”

  “하지만, 기분 좋은걸.”

  “언제 말 좀 들을래?”

  “나야 모르지.”

  “됐어, 집 가서 밥이나 먹자.”

 

  한쪽 어깨에는 용복을 기대게 하고, 다른 쪽 어깨에는 용복과 민호 자신의 가방을 둘러맸다. 수요일은 민호가 수업이 끝나고 가입 되어있는 축구 동아리에서 축구를 하는 날이다. 그래서 방과후 아무것도 없는 용복과 다르게 훨씬 늦게 끝난다. 하지만 용복은 민호에게 말했다. 기다리겠다고. 민호는 더운 날씨를 걱정해 안된다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용복의 고집을 민호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뜨거운 열기가 두 사람이 땀을 흘리게 만들었다. 서로의 피부가 붙어있었다. 땀으로 젖은 피부는 끈적해서 맞대고 있으면 불쾌한 감정이 들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복은 더 붙어버린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체온과 맥박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형. 집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 주면 안될까?”

  “집 가서 밥 먹어야지.”

  “아앙. 한 번만.”

  “이용복한테 내 용돈 다 쓰게 생겼네.”

  “형 사랑해~”

  “나도.”

  용복은 오늘도 민호의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요구한다. 민호는 거절 한 번 하지 않고 용복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민호의 한 달 용돈 10만 원 중에서 9만 원은 용복에게 맛있는걸 사준다고 사라지곤 했다. 둘은 자연스레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의 방향을 바꿔 아이스크림을 파는 동네 슈퍼로 옮겼다.

  형은 이거, 나는 이거. 용복은 빠삐코와 뽕따를 든다. 형, 뽕따 맞지? 어 맞아. 얼른 가지고 와. 계산한다? 용복은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민호가 기다리는 계산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슈퍼 아주머니는 계산해주며 묻는다. 매일 똑같은 걸 먹어도 안 질리니? 그럼 둘은 대답한다. 그럼요, 저희는 하나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거든요.

  밖은 여전히 뜨겁다. 그래도 입안과 손은 차가워졌다. 쭈쭈바를 주무르며 열심히 먹는다. 용복은 빠삐코, 민호는 뽕따. 근데 정말 신기하게 왜 하나도 질리지가 않는건지. 매년 여름이 되면 둘은 이 아이스크림들과 매일을 보낸다. 슈퍼 아주머니가 질려할 만도 하다. 몇 년째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거니까.

  하나를 사랑하면 끝까지 사랑하는 이 형제의 재능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 건지, 아무도 모른다.

*

  이용복은 이민호를 사랑한다. 형제니까 당연한 그런 사랑이 아니다. 좀 더 가까이 가고 싶고, 사랑한다고 귓가에 속삭여주고 싶은, 그런 연인의 사랑.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아마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각한 그 순간부터가 아닐까 싶다. 이용복은, 친형제를 사랑하고 있다.

  형이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았다. 무언가 잘하면 잘했다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좋았고, 항상 투정 부려도 다정하게 들어주는 마음씨가 좋았다. 과연 이것이 무슨 감정일까, 계속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보통 형제를 보면 입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나? 형이 저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좀 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게 보통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중학생 즈음 친구들이 연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 남들이 연인을 사랑하는 그 마음과, 용복 자기 자신이 형을 바라보고 있는 그 마음이 같다는 것을. 아, 나는 형을 사랑하고 있는 거구나. 형을 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형제는, 나의 마음은, 정상적이지는 않은 거구나.

 

  생각은 점점 깊게 퍼져나가서 용복을 잠식시켰다. 이 위험한 사랑은, 절대 들켜서는 안된다는 신념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다. 매일 형을 보고, 당연하다는 듯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형제로써의 사랑일 뿐. 용복의 가슴 깊숙이 박혀 있는 진심이 담긴 눅진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쭉, 살아왔다. 이 사랑의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절대 밖으로 꺼내지 않겠다는 그 다짐을 품고서는.

*

  여름 방학이 되자 민호는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춤을 배워보고 싶다나 뭐라나. 민호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열정이 있었다. 작년에는 노래 동아리, 재작년에는 요리 동아리. 그때마다 용복은 형을 따라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함께 댄스 동아리에 가입했다. 오디션을 보긴 했는데, 다행히 둘 다 몸치는 아니라서 쉽게 통과했다.

  결국 올해도 형과 알콩달콩 누워서 여름을 보내려던 용복의 계획은 실패했다,

  “영상을 찍는다고요?”

  “응, 우리 동아리 인스타 계정에 올릴 거야. 항상 그래왔거든.”

  이 동아리는 새로운 안무를 연습할 때마다 인스타에 발전 기록용으로 영상을 올린다고 했다. 새로 들어온 민호와 용복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학을 기념하여 또 새로운 안무를 연습하기로 했고, 둘은 첫 영상 출현을 하게 되었다. 어느 보이 그룹의 춤을 하기로 정했고, 인원수는 8명이었다. 댄스 동아리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안무 영상을 찍을 때는 인원수에 맞게 돌아가면서 찍는다고 했다. 이번에 둘이 새로 들어오면서 바로 찍기로 한 것이고.

  그날 이후로 연습은 계속되었다. 방학이라고 연습할 시간이 많을테니 회장이 빡센 곡을 골라온 것이 문제였다. 쉽게 출 수 있는 그런 난이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모두가 끊임없이 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연습했다. 그런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고 빛났다.

  바깥에선 하염없이 매미가 짝을 찾아 울어대고, 쨍쨍한 햇빛 아래서 이글이글 불타는 아스팔트 위 눈부시게 빛나는 프리즘이 반짝이고, 조금만 걸어도 뜨겁고 아찔한 기분이 들곤 하는데, 동아리실 안은 전혀 다른 세상 같았다.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연습하고, 계속해서 연습했다. 용복은 이런 모순적인 모습이 우스워, 속으로 작게 웃었다.

*

  “선배님, 이 파트에서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조금 다르긴 한데⋯ 너가 하는 게 더 괜찮다 민호야, 그렇게 할래?”

  “그래도 되나요?”

  “안 될게 뭐가 있어.”

  민호는 원래도 몸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기본기가 어느 정도 있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재능이 있었다. 선배에게 칭찬을 받고, 순탄하게 연습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용복은 정말 기본만 있고, 재능이 없는건 아니지만 칭송받을 정도의 실력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다.

  난이도가 높아서 춤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며칠 동안 정말 매진해서 춤만 췄다. 동아리실에서 떠나 집에 가서도, 둘은 노래를 틀어두고 함께 춤을 췄다. 틀린 부분은 서로 가르쳐주면서 몇 번이고 연습했다.

  “용복아, 거기 발을 좀만 더 들어볼래?”

  “이렇게?”

  “엉. 잘한다 내 동생.”

  민호는 함께 춤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도 언제나 다정했다. 용복은 마음 속 무언가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항상 여름만 되면, 자꾸만 가슴 한 켠의 무언가가 자라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꾹 참고 형 생각을 피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형의 목소리를 희미하게 흘려보내면서 안무 연습에 집중했다. 결국 그렇게 피나는 노력 끝에 안무를 전부 구사할 수는 있었다. 여전의 용복의 발은 불안정했고, 박자가 조금씩 어긋났지만.

*

  “컷ー! 용복아, 박자 어긋났어.”

  이미 예상한 상황이긴 했다. 아무리 연습해도 고쳐지지 않는 박자는 용복뿐만 아니라 모두를 괴롭게 했다. 회장 선배는 처음이니까 괜찮다며, 어려워도 이 정도면 잘 소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격려해줬다. 그 응원에 힘입어 용복은 이를 악물고 춤을 췄다.

  “컷, 그 박자 아니야.”

  하지만 세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벌써 네 번째 실수에 분위기는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괜찮다고 해주던 회장 선배의 얼굴에도 조금 지친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춤을 추는 동료들에 모습에도 춤을 반복하는 것이 지쳤다는 게 선명히 보였다. 계속 같은 부분에서 실수하고 마는 용복을, 용복 자기 자신조차 너무 보기 싫었다.

할 수 있겠지, 이번을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추자.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아무리 실수해도 딛고 일어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결국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 딛고 올라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 꾹 참고 노력했다. 분명 그랬는데.

*

  용복은 하염없이 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있는 모습.

  결국 다섯 번째 실수를 저질렀다. 아까와같이 사소한 박자 실수조차 아니었다. 박자를 맞추기 위해 좀 더 강하게 몸을 휘둘렀는데, 그대로 스텝이 꼬여버렸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용복은 넘어졌다. 자칫하면 다른 사람들도 휘말릴 뻔했다. 순발력으로 사람이 없는 쪽으로 넘어져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이미 또 실수를 저질러 버린 순간부터 모든건 끝나버린 상태였다.

 

  넘어진 용복을 보고 민호는 춤을 멈추고 달려왔다. 이용복, 괜찮아? 걱정 어린 눈빛으로 용복을 살피며 일으켜주었다. 그때 닿은 손길이 너무 따뜻했다. 형으로써 동생이 그렇게 넘어지면 챙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용복은 그 당연한게 너무 싫었다. 당연하지만 용복은 그런 마음으로 챙김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다정이 너무나 좋았다. 너무 좋아서 울고 싶었다. 그것은 너무나 따스했고,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나 잘 느껴져서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 따스한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더 오래 그 손길을 느꼈다가는, 전부 말해버릴 것만 같아서. 좋아한다고, 형제의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써 사랑한다고. 그렇다면 전부 끝나고 말테니까.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받고, 다시는 형과 이야기할 수 없을 지도 모르니까.

  계속해서 달렸다. 높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 와중에 왜 그렇게 위로 올라가고 싶었는지. 그렇게 용복이 도착한 곳은 학교 옥상이었다. 계단의 끝까지 올라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행인지 아닌지 옥상의 문은 열려있었고 용복은 그대로 달려나와 옥상에 쭈그려 앉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자꾸만 안무 실수를 하는 자기 자신? 아니면 자꾸만 다정하게 대해줘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민호 형? 뜨거운 햇살 아래서 고개를 수그린 채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 조금씩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그럴수록 머릿속에는 자꾸 어떤 인영이 강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형이 무뚝뚝하게 대해줬다면, 이렇게나 커져 버린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서 어딘가에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지금 용복의 마음은 이미 너무 커져 버려서 접을 수조차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순식간에 불어나서,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너덜너덜하고 숨겨야 하는 이 괴로운 마음.

  조금 눈물이 나왔다.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결국 따지고 보면 안무 실수를 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뿐만 아니라 형을 좋아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다. 결국 저만 없으면 전부 해결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 진짜 뭐가 문제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냥 이 모든 상황이 웃겼다. 다정한 형이 너무 좋은데, 그만큼 너무 싫어서 그 모순된 상황이 저를 신물나게 만들었다. 이 순간이 너무 웃긴데 눈물이 나서 그냥 흘려보냈다. 매미도 울고, 이용복도 울었다. 너무 뜨겁고 슬픈 여름이었다.

*

  “이용복! 한참 찾았잖아. 왜 뛰쳐나갔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익숙한 목소리가 저를 찾았다. 가장 듣고 싶었지만 듣기 싫은 그 목소리. 그래 다정으로 자신을 언제나 쉽게 살인한 그 목소리다. 오늘도 이용복은 그 목소리에 죽어버렸다. 이상하게 지금 들리는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훨씬 다정했기 때문에 두 번 죽었을 지도.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상한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용기가 순간 솟아올랐으니, 그것으로 용복이 뱉었던 말은.

  “민호 형, 나 형이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 형이 너무 다정해. 다정해서 너무 슬퍼.”

  “그게 무슨 소리야, 다정하면 좋아야지.”

  “아니야, 내가 원하는 다정은 그런 다정이 아니야.”

  용복이 세워져 있는 무릎 사이로 얼굴을 밀어넣었다. 민호는 그런 용복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옆으로 다가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구름 없이 푸르른 여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용복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너는 무슨 다정을 원하는데.”

 

  용복은 말이 없었다. 그 질문에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얼굴을 파묻고, 올곧은 자세로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일렁이는 옥상만이 조용하게 매미 소리를 품어내고 있었고,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르고, 조금 더 흐른 다음. 용기를 내 나지막이 읊조린 소리는.

  “형으로서의 다정 말고, 다른 거.”

  “⋯그게 무슨 의미야?”

  “형 나는, 형을 형으로서도 사랑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게 맞아?”

  “형이 나와 같은 마음일거라곤 생각 안 해.”

  “왜? 뭔지 알고.”

  “내 마음은 절대 평범한 게 아니니까.”

  말을 마친 용복은 좀 더 자신의 팔을 꼭 껴안아서 자꾸만 몸을 깊게 파고들었다. 더 말하기 괴롭다는 듯이 말이다. 아마 민호도 용복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용복은 그 다음을 듣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왜 너만 평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형, 난 이 마음을 알게 된지 벌써 5년이야. 그런 말 해도 안 믿어.”

  “아니 내가 뭔 말을 했다고⋯.”

  아니야, 형이 나와 같은 마음일 리가 없잖아. 용복은 자꾸만 무언가 말하려는 민호의 말을 거부했다. 그 대답이 긍정일지 부정일지 모르지만, 부정이라면 정말로 듣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함께해야 하는 형제인데, 부정의 대답을 듣고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다면, 그 끝의 결말은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설령 이기적이게 저의 마음만을 밝히고 형의 대답을 묵살한 채 평생 살아간다 할지라도,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다. 민호와 평생 행복하게 살지 못할 바에얀, 죽는 것이 훨씬 나았으니까.

  “그냥 더 얘기하지 마 형, 나 너무 슬퍼져.”

  “용복아⋯ 뭘 얘기라도 해줘야 형이 위로해주지 않겠니?”

  “형 알잖아, 나는 하나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는 거. 내 첫사랑이자 끝사랑은 형이야.”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거지?”

  “어. 나 형 사랑해. 형제로서 말고, 음. 여기까지만 할래. 더 얘기하지 말자.”

  잠깐 무릎 사이에서 튀어나와 말을 내뱉던 용복의 고개가 다시 무릎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민호는 가만히 그런 용복을 응시했다. 소심하지만 항상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작고 사랑스러운 동생. 항상 형을 위했고, 생각이 깊어서 그런 모습이 좋았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크게 기뻐해주는 모습이 좋았다. 저를 발견하면 항상 활짝 웃으며 달려오던 그 모습이 좋았다. 아마 용복은 이 사실을 모르겠지.

  민호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용복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린 후, 내린 다음, 얼굴을 올렸다. 무릎 사이로 파묻혀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눈이 젖어있는 그 얼굴이 퍽이나 귀엽다고 생각한 민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용복, 너도 알잖아. 나도 그런 거. 왜 내 첫사랑이 너일 거라곤 생각 안 하는데?”

*

  댄스 동영상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동아리실로 들어온 민호가 데려온 용복의 눈빛은 어째서인지 이상하리만큼 빛나고 있었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후 실수 없이 한 번에 완벽한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완성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을 때 반응 또한 지금까지 중에 가장 뜨거웠다. 좋아요 수는 물론, 댓글도 많이 달렸고, 덕분에 댄스부의 명성이 조금은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꽤나 인기를 끌었다. 정말이지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댄스 동아리의 회장은 기분이 좋았는지, 방학이 끝나고도 동아리에서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 민호와 용복, 둘 다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 권유에 민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또 울리고 싶진 않아서요.”

  그 말에 옆에서 민호의 대답을 듣고 있던 용복이 불을 붉힌 것은 아마 우리만 아는 이야기.

  어쩌면 처음부터 둘은 사랑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형제라는 틀 속에 갇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를 가두고, 진짜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을 뿐. 뜨거운 여름, 지겨운 댄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해지는 옥상이 아니였다면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했을 이 마음이, 결국 개화했다.

  그래, 이용복을 피어나게 하는 것은 세상 그 누구도 아닌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형 이민호였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에서 마침내 이용복은 피어났다. 조금 늦었지만, 깊고 아름답게 시작되어버린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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