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d4_editedsq.webp

고양이탐정

베이스는 낭만, 보컬은 열정, 그리고 우리는,

  세상은 생각보다 실수투성이다. 페니실린은 알렉산더 플레밍이 세균 배양 접시를 치우지 않고 방치하면서 발견됐고, 전자레인지는 녹아버린 주머니 속 초콜릿으로부터 발명됐다. 그러니까 이 몸이 1년 꿇어 3학년 아니고 2학년으로 재시작한 것도 뭐,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나? 그러나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우리의 밴드부에 들어서게 된 것만큼은 실수가 아니다. 공부 재미없고 체육은 이젠 힘 빠지고 미술은⋯ 재능 없고.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음악의 길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맞는 것 같기에 입학하자마자 덜컥 들어간 동아리에서 어쩌다 보니 터줏대감을 맡게 된 것이었다. 뭐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나 새 학기도 시작된 만큼, 이 퀴퀴한 동방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만 했다.

  시간은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반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교장 말 듣고 있는 것만큼 지루한 게 없다. 뒷문으로 슬ー쩍 몸을 빼자마자 오늘도 나갈 거냐며 소리 지르는 담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억울한 것이 있다. 오늘도라니? 입학식 날 수업 짼 거 지금까지 딱 3번밖에 안 됐는데. 하여튼 예민한 영감탱⋯ 딱히 볼 것도 없으면서 괜히 주위를 서성이다가, 문득 시야에 들어온 건 조금 전까지 교실 티비에서 나오던 강당이었다. 오, 좋은 생각. 새로운 바람이라 함은 말 그대로 새로울수록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이 학교 고인물 데려오는 것보다야 맑은 물 들여오는 것이 밴드부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임이 분명했다. 때마침 선서 시간이 시작되고, 한 사람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선서, 우리 입학생 일동은 본교 교육 방침에 따라ー”

  아, 얘다. 목소리 완벽, 에티튜드 완벽. 이만큼 우리 동아리에 어울리는 인재는 없으리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입학식 및 개학식이 끝나고 1학년들이 우르르 밀려 나왔다. 그새 말을 텄는지 떠드는 애들, 낯섦과 어색함에 두리번거리는 애들. 대부분 흔하디 흔한 신입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단상 위에 있던 그 애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마치 이미 다니고 있던 학생처럼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기에 하마터면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모습 그대로 놓쳐버릴 뻔했지만, 찜해둔 사람을 놓칠 내가 아니지.

  “야,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저를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지나가려 하기에 어깨를 턱 붙잡으니 그제야 이쪽을 봐주더랬다.

  “저요?”

  “그래 너. 이름하고 반 알려줘봐바.”

  “저⋯ 이⋯ 이용복이고 반은 4반이요⋯.”

  “용복이? 그래 용복아, 이따 보자 밥 맛있게 먹고~”

  이름도 구수하니 좋네. 약간 쫄은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겠지? 오늘 급식 뭐드라.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돌아오니 이미 혈기 왕성한 고딩들은 밥 먹으러 뛰쳐나갔는지 텅텅 비어 있는 교실만이 반길 뿐이었다. 밥 같이 먹자매 이 자식들아⋯.

  점심시간이 끝나고 벌써 3번째로 듣는 선생님의 자기 소개와 언제나와 같은 수업 커리큘럼. 새 학기의 수업 시간이 언제나 그렇듯 쉬는 시간은 한참 멀었음에도 학생들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그래도 1년 다녔다고 아는 애들이 알음알음 있는지 같은 반 애들은 서로 자기소개하고 지들끼리 떠드느라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와중에 내가 한 살 많다는 것도 이미 소문났는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의 눈빛만 쏘아질 뿐 다가오는 애들은 하나도 없었다. 얘네는 한두 살 많은 선배는 아무것도 안 해도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열 살도 아니고 스무 살, 서른 살 많은 선생님에게는 전혀 두려움을 모르는 이상한 애들이다. 뭐 암튼, 내가 알 바는 아니고. 새로 영입할 행복이? 걔는 아무래도 보컬이 맞겠지 음음. 세상 그렇게 낮은 목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남자애들 곧 트름할 것같이 하는 가짜 저음이 아니고 진짜 저음. 나나 다른 부원들이나 이차 성징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아주 슬프지만) 모두 얇은 목소리의 소유자였기에 작금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수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이미 자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애들은 나갈 생각도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아니지~ 곧장 1학년들이 있는 2층으로 내려가 보았다. 4반⋯ 4반⋯ 아, 저기 있다. 행복이의 외모나 목소리 기타 등등이 이미 소문 퍼졌는지 4반 앞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하⋯. 어쩔 수 없지. ‘그걸’ 해야 하나. 1년 꿇고 나서는 최대한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역시 불가능한가, 쯧.

  “어이 행복이!!!”

  보이는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인간들이? 역시 목청은 좋고 볼 일이다. 때마침 허둥지둥 문을 열고 나오는 까만 머리가 보였다.

  “죄송해요⋯. 저 고등학교 처음 와봐서 잘 몰라요⋯ 저 기합? 받아요? 그리고 저 용복이인데⋯.”

  “응? 아니 너 우리 동아리 들어오라고.”

  “네?”

  “아 이게 아닌가. 너! 우리 동료가 되어라!”

  “무슨⋯ 동아리인데요⋯?”

 

 

 

 

 

 

  그렇게 인기스타 신입생과 겨우겨우 말을 붙이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분명 동아리에 관해서 설명할 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정기 공연이 있다고 할 때 거절하는 애들이 더러 있어 그 부분을 말할 때는 조심스럽기까지 했으나 오히려 눈을 더 반짝이는 모습에 아, 이건 됐다 싶었다. 그러나⋯.

 

  “그래서 너는 보컬로 오면 돼!”

  “어⋯ 안⋯ 할래요.”

  “⋯??? 왜?? 아니⋯ 그래 이유라도 말해봐.”

  “저 노래 못해요. 죄송해요. 동아리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나 너같이 좋은 목소리 처음 들어봤단 말야. 제발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될까?”

  “옆 반에 신욱이도 목소리 좋대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저 수업 가야 돼서.”

  “뭔욱이? 아냐, 우리는 네가 필요해. 잠깐잠깐!! 아아, 가지 말고⋯! 갔네⋯.”

 

  이번 수업 시간엔 웬일로 잠도 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무슨 일 있냐 묻길래 짝사랑 때문이라고 답했더니 잠깐 소란이 일었지만, 정작 내 귀엔 아무것도 안 들어왔다. 중요한 건. 용복이. 어떻게 해야 꼬실 수 있을지 여러 방법을 고민해 봤지만 역시 답은 하나였다.

  “베이스는 어떠냐 용복아.”

  다른 걸로 꼬시기. 어차피 원래 베이스를 맡던 애가 3학년 됐답시고 동아리를 배신해 버리는 바람에 빵꾸 메워줄 사람이 하나 필요하긴 했었다. 이번에는 지원군도 납치⋯ 아니, 아니 포섭해 왔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작전도 짜왔다. 기필코 우리 동아리에 입부 시키겠다는 열망 하나로!! 자 스타트는 끊었으니 이제 지원군의 등장.

  “제에발 와주라 응? 우리 부실에 간식거리도 많고 어⋯.”

  “햇살.”

  “아 그래 우리 방 4층이라 햇살도 잘 들고⋯ 아무튼⋯ 아 몰라 이제 형이 알아서 해. 아니 애초에 하기 싫다는 애를 굳이 데려와야 해?”

  “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그리고 작전 다 까먹었어? 아직 플랜 BCD 남았다. 우리의 거래 잊지 않았겠지?”

  “하, 아ㄴ⋯”

  “저 할게요.”

  “응?”

  “뭐?”

  전유진 이 배신자 놈이 작전을 다 망치는가 싶던 순간 예상 외의 답변이 들려왔다.

  “베이스 배워보고 싶었어요! 재미있을 것 같고⋯ 저 바이올린 켰었거든요. 언제부터 가면 돼요?”

  “야 바이올린이 베이스랑 어떻게 같⋯”

  “너!!!무 잘 생각 했어. 응응. 우리가 다 가르쳐 줄게 전에 하던 애가 두고 간 베이스 있거든? 좀 꾸지긴 한데⋯ 그래도 소리는 나니까 처음 배우기에는 딱 좋을거야. 시간은 음, 오늘 방과후?”

  “아니 형 그렇게 갑자기 말하면 애가 당황하지. 게다가 오늘 입학식 날인데?”

  “저 돼요! 오늘 수업 끝나고 갈게요. 재밌겠다.”

  배시시 웃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우리의 압박 때문에 강제로 들어오겠다고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무릎도 꿇어볼까 했는데 얘기가 빨라서 좋군. 옆에서 어떤 애가 황당해하는 얼굴로 보든 말든 쇠뿔도 단김에 뽑는다고. 혹시 몰라 챙겨온 입부 신청서에 바로 사인을 받고, 나름대로 구색 갖추겠답시고 비즈니스 핸드 셰이크도 마쳤다(그러니까 그냥 악수했다는 소리다). 때마침 쉬는 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아주 후련한 마음으로 교실로 돌아갔다. 이게 바로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인가? 큰 짐을 하나 덜고 나니까 잠도 더 잘 오덥디다.

 

 

 

  학기 초의 햇살은 유난히 더 따뜻하다. 덕분에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종례는 이미 끝난 지 오래고 해가 져가는 교실은 천천히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오 멋있는데⋯ 아, 이게 아니지, 딱 보니까 나만 지각일 각이 보이기에 아주 오랜만에 전력 질주해 4층 맨 끝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널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나른한 표정의 얼굴은 당연하다는 듯이 나의 눈이 멈추게 했다.

  순간 눈이 마주치⋯

  “형 안 들어오고 뭐 해?”

  한창 감상하고 있는데 방해꾼이 불쑥 시야를 가렸다. 그래 너네도 있었지 아무렴. 얘기를 들어보니 서로 자기소개는 끝난 참인 듯 보였다. 그런데 이 자식들 표정이 뭔가 어색한 것이⋯ 가장 중요한 걸 지들은 말 안 하고 나한테 미룰 작정인 게 눈에 뻔히 보였다. 그래 어쩌겠냐 이 형님이 또 나서줘야지.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줄게, 우리 4달 뒤에 바로 공연이야.”

  “미리 말 못해줘서 미안⋯ 너 스파르타 훈련 받아야 돼.”

  “어떡하냐⋯ 민호 형이 직접 가르쳐주는 거지?”

  “힘내라⋯.”

  “네?”

  “그래그래 됐고. 쟤네랑은 다 말 텄지? 난 이민호고 맡은 건 보컬, 잘 부탁한다?”

​​

  그렇게 우리의 일대기는 나른하고, 또 소란스레 시작되었다.

​​​​

​​

​​

​​​

​​​

베이스는 낭만, 보컬은 열정, 그리고 우리는

​​

​​

​​

  푸르른 풀떼기들이 새 학기가 진짜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슬슬 숨만 쉬어도 여름이 오는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아니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손 냄새만 맡아도 그랬다. 지각하면 그대로 너, 너, 너, 잔디. 한 문장으로 모든 아이를 제초기로 만들어버리는 고루한 학교에 다닌 죄로 손에선 언제나 풀 냄새가 진동했다. 학교 다니는 3년 내내 이 짓을 하다 보니 이제는 요령도 제법 터득한 것 같았다. 이참에 귀농이나 해? 무념무상 잡초를 뽑다 보니 언뜻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야 9시 10분인데 아주 느긋하셔요? 너도 잔디.”

  “잔디가 뭐예요⋯?”

  “저기 저 형 보여? 가서 알려달라 해. 아주 그냥 베테랑이셔~ 어허! 이민호 똑바로 안해?!”

 

  쳇, 모를 줄 알았는데. 사실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유니크한 목소리의 소유자는 하나뿐일 것임이 분명했으니. 쭈뼛쭈뼛 다가오는 모습이 꼭 겁 많은 아기고양이 같았다.

  “그새 못봤다고 까먹은 건 아니지? 어여 앉어. 가만히 있으면 또 혼난다?”

  “1학년!! 빨리 끝내고 교실 가야겠지?”

  “거봐 쯧쯧⋯ 참을성 부족한 인간 같으니.”

  “⋯뭐 뽑아야 되는 거에요?”

  “어어, 쌤은 다 뽑으라고 하는데 난 봐서 예쁘면 두고 안 예쁘면 뽑아.”

  “오 진짜!! 이 꽃 예쁘당.”

  “꽃반지 만들어 줄까? 애들 몇 번 만들어 줬었는데. 나 이래 봬도 능력자야~”

  “헐 좋아요. 저 저 꽃으로 해주세요.”

  “그래그래 손 줘봐바.”

  “너네 수업 안 갈 거니?!”

  이크, 간만에 실력 발휘하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더 이상 딴짓하게 두지 않으려나 보다. 그래도 점심시간에 용복이가 먼저 찾아와줘서 이번에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재시도할 수 있었다. 똑같은 꽃은 아니지만 비슷한 노란 꽃을 찾아서 반지를 만들어주니 마음에 드는 듯 이리저리 돌려보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서 조물조물댄 보람이 있었다.

  “야 근데 담부터는 지각하지 마라~ 지금은 할만한데 더 지나면 개더워.”

  “네에.”

  “이제 말 놔도 돼. 뭐 몇 살이나 차이난다고 불편하게시리.”

  “웅.”

  그러나 당부와는 달리 굉장히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같은 장소에서 그 애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도 굉장히 여러 번.

  “⋯야 너도 참 너다. 어떻게 학교 나오는 5일 중에 3일을 지각하니?”

  “근데 오다 보면 자꾸 고양이가 말을 걸어.”

  “이젠 안돼 너희 엄마가 알면 너 혼낼 거야.”

  “엄마가⋯ 엄마가 나를 포기했어.”

  “그래⋯.”

  그래도 동지가 생기니 외롭지 않기는 하더라. 앞으로 더 더워질 텐데 땀내 대신 풀내 나는 건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 몇 주간 제초기 체험활동이 계속되다 보니 교복도 나란히 썸머그린으로 소매 리폼 완료됐다. 패션업체 관계자들 긴장하시오, 아무도 따라 하지 못할 S/S 신상의 등장이니라.

 

 

 

 

 

 

  시간은 다시 앞으로 가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하던 날의 이야기다. 지금은 보컬을 맡고 있으나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간지는 베이스라며 베이스를 잡았던 적이 있었기에 지금껏 베이스 레슨은 내가 해왔었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용복이의 레슨 또한 나의 몫이 됨이 당연했다. 높은 확률로 부원이라는 자식들 때문에 용복이는 레슨을 시작하기도 전에 달달 떨고 있었다.

  “바이올린 했었으면 코드는 알지?”

  “응! 약간 까먹긴 했는데 하면 기억날 것 같아.”

  “그래그래 괜찮아. 하면서 익히면 되지 뭐.”

  “⋯형 낯설다? 왜 이렇게 살살해?”

  “뭐가. 아 설마 전에 했던 얘기하는 거? 그건 그 새⋯ 아니 걔가 말을 드럽게 안 들으니까 그랬던거고.”

  지들이 잘했으면 혼나지도 않았을 것을 쯧. 나는 너네들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천사가 될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는 수련회 교관같은 타입의 선생이라구? 용복이는 말을 잘 들었으니까 천사가 된 거고.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까 웃기네?

  “너네 같으면 용복이한테 막대할 수 있겠냐? 그리고 유진이 너는 설마 용복이 질투하니? 어쩐지⋯ 같이 영입하러 갔을때도 뚱하게 굴더니만.”

  “아니 뭔소리야. 그건 다른 얘기잖아. 어어? 용복이 너는 왜 형한테 은근슬쩍 달라붙냐?”

  “거봐 거봐 또 질투하는구만.”

  “형 너무 그러진 마요. 보기가 좀⋯.”

  “와 나 이 둘이서 아주 쌍으로 나를⋯! 아니 다른 사람들도 좀 봐봐, 안 이상해?”

  “엉 안 이상해. 너야말로 왜 그러냐?”

  “레알. 아 일단 저희 맞춰봅시다. 저 오늘 갑자기 학원 보충이 잡혀서 금방 가야될 듯.”

  여기서 잠깐 알리자면 우리 동아리는 기본적으로는 자율연습이 기본 규칙이다. 하지만 공연을 해야 하다 보니 가끔은 다 같이 만나서 연습하곤 한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물론 용복이가 이제 막 베이스 드는 법을 익히는 중인 만큼 간단히 순서 등이나 맞춰보면 끝인 아주 짧게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아리가 그렇듯이 우리도 활동만큼이나 노는 게 중요했으니, 끝나면 평소같은 루틴으로 놀러갈 심산이었는데 지금 저자가 한 말인즉슨 우리를 배신하고 혼자 떠나가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뭐 그래도 괜찮다. 쟤 말고도 셋이나 더 있었으니까.

  “아 맞다. 형 저도요.”

  “나도 가야됨. 곧 3모잖아.”

  “너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야, 야. 3모 하~등 안중요해. 진짜다? 형 말 들어.”

  “1년 꿇은 사람 말은 별로 신빙성이⋯.”

  “이것이 보자보자 하니까⋯ 야아 용복아⋯ 너는 안 가지? 너는 저 자식들처럼 배신하지 않을 거지?”

  “응? 난 학원 안 다니는데.”

  “그래그래, 쟤네 싹 다 보내버리고 그냥 우리 둘이 놀자 행복아.”

 

  약간의 허세를 섞어 떠보는 말이었는데 셋은 아무 말없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기다렸다는 듯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허망한 눈으로 나가는 부원들을 바라만 보는 내 처지가 스스로도 안타까웠다⋯.

  “형 진짜 죄송해요⋯ 아시잖아요. 저희도 내년에 고3이니까⋯ 형도⋯ 아, 아니에요. 노래는 다음에 꼭 맞춰봐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용복이도 안녕~”

  “안녕히 가세요~ 형 그래서 우리 뭐해?”

  “그러게나 말이다⋯ 여기서 뭘 더 하긴 애매하고. 연습도 할 겸 노래방이나 갈까.”

  그렇게 텅 빈 동아리 방 문을 잠그고 향한 곳은 부원들과 자주 가는 단골 노래방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반겨주시며 익숙하게 방을 안내해 주시고 용복이는 이런 곳은 처음인지 연신 두리번거리며 내 옷자락을 붙잡고 졸졸 따라왔다. 사실 용복이가 불편해할까 싶어 요즘 애들 많이 가는 코인노래방이나 갈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돈 없는 학생이 오래 놀려면 이런 옛날식 노래방이 최적이었다. 학교 끝나자마자 오면 손님도 없어서 쾌적하고, 사장님이 서비스도 팍팍 주신다. 처음 들어서면 곧 감기 걸릴 것처럼 춥던 방도 열창하다 보면 금세 열기로 후끈후끈해진다. 낯선 환경에 어색해하던 용복이도 금세 분위기에 휩쓸려 목이 터지라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무제한서비스제공사건으로 영원히 나가지 못할 것 같던 노래방에서 탈출하고 나니 이제는 배가 고파왔다. 땀을 그렇게 흘렸으니 그럴 만도? 들어올 때만 해도 노을이 지고 있던 하늘은 어느새 새까매져 있었다.

  “야 용복아 배고프지 않냐?”

  “어 나 배 좀 고픈 것 같애.”

  “롯데리아 좋아해?”

  “네에!”

  “그래 가자~ 이 형아가 사주마.”

  “오예~”

  그렇게 그 하루는 용복이 놀아주고, 밥 먹여주고 심심하니까 오락실도 잠깐 구경했다가 그렇게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생각해 보면 항상 같은 것만 하면서 노는데 어떻게 이렇게 안 질리는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은 용복이도 마찬가지였는지 다음 날 학교에서 마주치자마자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오늘 또 가자!’ 외치는 바람에 진정시키느라 애 좀 먹었다. 그날 또 놀지는 않았지만 대신 매주 이렇게 학원 안 가는 둘이서 노는 날로 새로운 규칙 아닌 규칙이 생기게 되었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언제나 배가 고픈 법이다. 점심시간 종만 울리면 시작되는 발소리는 거의 뭐 땅울림 수준이다(진격의 거인 참고). 특히나 좀 특별하다 싶은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정도가 심해져서 급식 줄이 끝없이 길어지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보통 이런 날에는 급식은 쿨하게 거르고 매점 사냥에 나선다. 그러나 나 같은 학생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인기 많은 품목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 이 모든 사실이 합쳐진 수요일의 점심시간은 아주 전쟁통이 따로 없다. 고정적으로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날임과 동시에 가장 인기 많은 간식인 컵 닭강정 재고가 채워지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느적느적 사람 다 빠졌을 때 매점에서 빵이나 몇 개 사 먹었겠지만, 오늘만큼은 허벅지에 힘 빡 주고 뛰어야만 했다. 용복이가 우리 학교에 입학한 지도 한 달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컵 닭강정을 못 먹어봤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 이민호, 절대로 그런 일은 두고 볼 수 없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그 엄청난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나는 컵 닭강정을 하나 얻어낼 수 있었다!

  “야 용복아 내가 뭘 구해왔는지 아냐?”

  “뭔데? 어, 맛있는 냄새 난다.”

  “이걸 보시라!”

  순진하게 교실에서 편하게 먹다간 ‘한 입만’ 녀석들에게 몽땅 뺏길 것이 분명했기에 요즘 우리의 아지트와 같은 곳이 된 옥상 계단으로 향했다. 처음 거기서 점심을 해결했을 때는 오해를 받아 소지품 검사를 당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거의 지박령이 되어 지나다니는 선생님들이 가끔 아는체하며 간식을 나눠주시기도 했다. 오늘도 둘이서 컵 닭강정 하나를 나눠 먹고 있으니 한 분이 우리에게 콜라를 선사해 주시고 가셨다. 땡큐, 티쳐.

  우리의 소소한 일탈은 몇 번 더 있었다. 한 번은 점심시간에 담을 넘어서 짜장면을 먹고 왔는데(생각보다 용복이가 담을 능숙하게 넘어서 좀 놀랐다⋯.) 아무 생각 없이 떠들면서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왔다가 그대로 걸려서 방과후에 남기도 했었고, 떡볶이를 배달시켜서 은밀하게 전달받다가 곧장 들켜서 압수당하기도 했다. 나중에 돌려받은 떡볶이는 신기하게도 새콤달콤하다 싶더니 다음 날 둘이서 나란히 배탈에 걸려버리는 사고도 있었다. 여름이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혈기 왕성한 남자애들과 같이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는 것이 루틴이었건만 요새는 그냥 책상에 누워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자는 것이 가장 좋았다. 나름 낮잠 메이트도 있었다. 같이 자는 건 아니었고 그냥 옆에서 내 폰으로 게임을 하는 게 다였다. 안 심심한가⋯?

  “용복아 재밌어?”

  “웅.” 

  “그래 난 잘란다⋯ 심심하면⋯ 깨우진 말고 딴 겜 깔아서 해.”

  “웅.”

  눈을 감으려는 순간, 이상하게도 등줄기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등 뚫어지겄네. 그래 말해봐.”

  “⋯현질 해도 돼?”

  “⋯뭐 할건데.”

 

 

 

 

 

 

  하루는 뭔 종이를 잔뜩 가져와서 큰일이 났다며 다급하게 나를 깨웠다. 뭔가 했더니 1학년 때 나도 좀 힘겨워했던 수행평가 과제였다. 이걸 아직도 똑같은 걸로 시키고 있다니⋯. 문제 풀이 과제였는데 내가 했던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문제들이 쓰여있었다. 훗, 그렇다면 도와줄 수 있지. 대신 집에 가서 종이가 어디에 있나 좀 뒤져봐야겠지만⋯.

  “이거 언제까지야?”

  “오늘 6교시까지⋯.”

  ⋯나랑 같이 지내다가 괜히 안 좋은 걸 배우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심시간 내내 둘이서 머리를 부여잡고,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교과서를 뒤지며 모든 빈칸을 채우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결과는⋯ 45점. 100점 만점인 거 맞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과거에도 틀렸던 걸 그대로 알려줘 버려서 점수가 그 모양인가 보다 싶었다. 그러나 곧 진실을 알게 된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모습을 보이지 않길래 아주 오랜만에 용복이네 반을 찾아간 날이었다. 항상 보던 용복이의 반 친구가 아닌 처음 보는 놈이 용복이 곁에서 뭐라 말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듣자 하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왜곡이 있을 수 있음).

  “용복아 숙제 좀 베끼자? 앙?!”

  “웅 그래⋯ 근데 네가 직접 하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야 숙제 보여주는거 싫어서 그러는거지 너. 그냥 좀 보여주면 안 되냐? 하여튼 기생오라비같이 생겨선⋯ 칷, 씨.”

  거기까지, 더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어이, 동작 그만. 너 지금 뭐하냐?”

  “어⋯! 그 1년 꿇었다던 선배다⋯.”

  “우리반에는 왜 오셨지? 무서워⋯.”

  “왜 대답을 안 하지?”

  “⋯저 부르셨어요?”

  “그래 너. 친구가 싫다하면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 혹시 안들어? 하⋯ 씨X⋯ 못 알아듣겠어? 그만하고 자리로 가면, 좋을텐데. 그치.”

  “⋯죄송합니다!!”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중학생 때 몇 번 들었던 일진 말투를 좀 흉내내봤는데 자연스러웠나 모르겠다. 자연스러웠으니까 간 거겠지? 입 터는 거에만 자신있는데 혹시 몸싸움으로 이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니 근데 내가 저런 이미지였다니.

  “형 왜 그랬어⋯ 욕도⋯ 쓰고⋯.”

  “엇 놀랐어? 미안⋯ 근데 너 평소에 저런 애들한테 그냥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거 아니지?”

  “응 이번이 처음이야. 진짜 형 안 그래도 됐었는데. 음, 어떻게 알려주지⋯. 아, 내가 한 거 봐봐.”

  “그으래⋯ 이게 네가 한 거라고?”

  “응, 그래서 네가 하는 게 나을 거라고 했는데 너무 사정사정하길래 이걸 보여줘야 하나 싶었어. 흠 그렇게 생각하니까 형이 해결해줘서 다행이네. 고마워!”

  “아니 뭘⋯ 간다⋯ 공부 열심히 하고⋯.”

  “웅 이따 봐~”

  이번 기회로 다행인 점과 걱정되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용복이가 나 때문에 문제아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니었다는 점이고, 걱정되는 것은 우리 둘의 미래였다⋯. 끼리끼리 만나서 논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교훈인가?

 

 

 

 

 

  금요일 567교시는 언제나 동아리 시간이다. 용복이가 바이올린 했었다는 말을 괜히 한 것은 아닌지 베이스도 금방 익혀서 요즘은 만나면 다 같이 합주 연습을 했다. 오늘도 당연히 그러겠지 생각하며 터덜터덜 4층으로 향하며 목을 풀고 있었다. 그러다 어쩐 일인지 반에 있지 않고 밖에 나와 있는 담임쌤을 마주친다. 그냥 지나가려고 했으나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 어깨를 텁 붙잡힌다.

  “민호야, 나 좀 보자.”

 

  저 영감탱이 나를 이민호! 가 아니고 민호야~ 하고 불렀단 말야? 아까까지는 그냥 느낌만 공포영화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공포는 곧 현실이 된다. 따라간 곳은 일반인이(반장이나 임원이 아닌 학생) 끌려가면 무지막지한 일을 당한다고 알려있는 개무시무시한 곳⋯ 바로 교무실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무, 무슨 일로 저를⋯.”

  “너 올해 2학년이지. 근데 19살이고.”

  “네, 그렇습니다.”

  “너 원래 같았으면 3학년이야. 알지? 정신차려. 다른 애들보다 늦은 거 알면 열심히 해야하지 않겠어? 언제까지 지각하고, 수업 째고, 이렇게 살래, 응? 오늘 전화 왔다. 부모님이 걱정 많으시더라. 집 가면 얘기 잘 하고.”

  “⋯네.”

  당연하게도 밴드부 활동에 집중할 수 없었다. 종일 멍때리다가 겨우겨우 짐만 챙겨 집으로 갔다. 미뤄두던 현실을 타인에 의해 억지로 직면하게 된 후의 기분은 절대 유쾌하지 않다. 교무실 문을 나왔을 땐 별생각 없던 것 같은데, 버스를 타고 나서부터는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어폰을 꼈는데 노래가 귀에 안 들어왔다. 한 달 전엔 적당히 넘겨들었던 담임의 말이, 오늘은 숨통을 조이더랬다. 사실은 어렴풋이 학업이나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머리 아픈 느낌에 금방 모르는 체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갑자기 문제 앞으로 놓이게 될 줄은 몰랐다. 심란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여니 엄마가 아무것도 없는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오는 듯했다.

  “민호야, 학원 끊어줄까?”

  “⋯.”

  내게서 등을 보이고 앉은 엄마는 식탁 위에 엎어놓은 손만 만지작거렸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을 듣게 돼 버렸다. 보통의 19살들과는 조금 다른 시간표를 살아가는 나란 걸 스스로도 잘 안다. 언제나 마음 한 켠이 무겁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남들처럼 똑같이 사는 척을 하긴 싫었다. 엄마에게는 미안했다.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갑자기 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확실한 건 다른 애들과 다를 바 없이 학원과 학교를 오가는 생활을 하는 것은 절대로 원치 않았다. 그건 그냥⋯ 나 같지 않았다.

  “저 음악 하고 싶어요.”

  떠오르는 대로 뱉었다. 생각보다 또렷하게 입 밖으로 나왔다. 이게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말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끌려가듯 살고 싶지는 않았다.

  “뭐, 음악? 밴드인지 뭔지, 또 그 얘기야?”

  “⋯이번에는 진짜예요.”

  “⋯한 번만 더 말해봐.”

  “공연 보러 오세요. 보고 얘기해요.”

  엄마에게서 체념인지 분노인지 모를 한숨이 흘러나왔다. 순간 말실수였나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기존에 준비한 계획은 전면 갈아엎는다. 노래, 편곡, 인사말까지. 엄마가 박수 칠 때까지 안 끝난다. 절대로.

 

 

 

 

 

 

  “얘들아 X됐다.”

  어제는 비장하게 별의별 말을 다 해놓고, 정작 이제야 현실감이 몰려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애들을 바로 소집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하나같이 달려와 준 애들이 고마워서 뜸 들이지 않고 곧장 본론부터 꺼냈다.

  “우리 준비한 거 싹 다 갈아 엎어야 돼. 우리 이래서는 무대 못 찢어.”

  “아니 갑자기 뭔 소리야. 지금도 충분하지 않아?”

  “그래, 용복이도 이제 손에 익었고, 합주도 척척 맞잖아. 이제 와서 바꾸자고? 아니 뭐 아직 몇 달 남긴 했다만⋯.”

  “아니? 부족하다 얘들아. 이번에는 무대를 찢다 못해 박살내야 돼.”

  “민호형⋯ 무슨 일 있었어?”

  “형 밴드부 그만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용복아⋯.”

  “뭐?”

  “네?”

  “에?”

  “???”

  적잖이 충격받은 얼굴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설명하자, 의외로 다들 제 일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해주고, 열 받아주고, 옆에서 뭐라도 해보자고 같이 말해주는 친구들이란. 크흡 얘들아 난 너네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공연은 처음부터 다시 뜨겁게 시작됐다.

  “형 나 편곡할 줄 알아. 그건 나한테 맡겨.”

  “유진이 너⋯! 능력자였군 이 자식⋯!”

  “감탄은 결과물 나온 다음에 하시고. 다들 학원 다니고 시간 없으니까 노래는 둘이서 찾기로 오키?”

  “네!!”

  “그래 알았다. 너네는 다 공부에 집중해 괜찮아 괜찮아. 그냥⋯ 다들 너무 고맙다⋯.”

  “어 형 울어?”

  “울겠냐? 자자, 그럼 오늘은 해산!”

  “민호형의 학원탈출을 위하여, 아자아자아자!”

  “아자!!”

 

 

 

  공연 계획이 바뀌었다 하여 우리의 루틴도 바뀌지는 않았다. 똑같이 점심시간에 같이 놀고, 가끔 방과후에 같이 놀고. 달라진 거라면 노래 감상 타임이 추가됐다는 거? 애들이 우리한테 이 역할 맡기면서 되게 미안해하는 것 같던데 솔직히 나야 컨텐츠가 늘어서 덜 심심하겠다 싶기만 했다. 무울론? 노래 찾는 게 조금 힘들긴 하더라. 이번 공연의 주제는 백투더7080. 어른들을 저격해야 했지만 동시에 학교 소속 밴드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생들도 다 같이 즐길 수 있어야 했다. 평소에 딱히 노래를 가려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옛날 노래를 찾아서 듣지도 않았었는데 다행히도 용복이가 옛날 노래에 일가견이 있었는지 쉬는 시간마다 차곡차곡 리스트를 작성해 와서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끼고 천천히 노래를 음미했다.

  “용복아 넌 어쩌다가 옛날 노래를 이렇게 많이 알게 됐냐?”

  “나? 그냥~ 옛날 노래가 좋던데? 되게 차분해지고. 그리고 가사 한 번 잘 들어봐 형.”

  “가사? ⋯음. 확실히 요즘 노래들보다는 뭔가 몽글몽글하네.”

  “그치. 꼭 시 듣는 것 같아서 좋아해.”

  용복이는 가사만 얘기했지만 용복이가 손으로 하나하나 적었을 노래 제목들도 순서대로 읽다 보면 그것도 꼭 한 편의 시 같았다. 나에게는 뻔하기만 한 사랑 얘기들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이제는 지겨운 이별 노래들도 옛날에 쓰인 곡들은 뭔가 가슴을 울리는 게 있었다.

  난 네 앞에 서 있어

  너는 생각에 또 잠겨 있네

  나도 모르게 옆을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멍하니 턱을 괸 옆모습이 또 시선을 붙잡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라 바로 다시 앞을 봤지만, 빨개진 귀는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내가 왜 그랬지? 그냥 쳐다볼 수도 있는 건데 이상하게 귀신이라도 본 듯 심장이 쿵쿵 뛰었다. 너무 오래 쳐다봐서 나도 모르게 민망해졌나? 그랬나보다 응응.

  “뭐야 이용복. 너 왜 웃어.”

  “그냥~ 노래가 좋아서.”

  피식 웃는 게 다른 애들 같았으면 왜 비웃냐며 딱밤을 콩 때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차마 용복이한테까지는 그럴 수 없었다. ⋯빨개진 귀를 가리느라 손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용복이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노래는 금방 정해졌다. 대부분 무리 없이 소화해 낼 수 있었으나 문제는 마지막 곡이었다. 피날레를 장식할 곡인 만큼 가장 정성을 들여야 하고, 완벽하게 해내야 했는데 음역대가 너무 넓어 도저히 나 혼자 소화해 낼 수 없었다. 방과후, 해가 지고 다른 애들이 먼저 다 떠날 때까지 시도해 보았지만, 선천적인 목소리나 톤은 순식간에 바꿔낼 수 없는 것이었다. 포기해야 하나, 완벽한 공연은 역시 해낼 수 없는 것일지 고민하던 그때, 옆에서 베이스를 만지작거리던 용복이가 말을 걸어왔다.

  “형. 보컬, 내가 할게. 같이 하자.”

  “진짜? 아니⋯ 괜찮겠어? 너 노래 안 부르고 싶다매.”

  “맞아 그랬는데⋯ 몰라? 형이랑 노래방 다니면서 자신감이 붙었나 보지!”

  말을 끝내고 싱긋 웃는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베이스에 보컬 연습까지 괜찮겠냐고 연신 물어봐도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해 오는 모습에 도저히 고마움과 기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순간 다른 애들처럼 머리를 벅벅 쓰다듬어주려다가 손이 중간에 멈췄다. 괜히 용복이한테는 그렇게 막 대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손이 망설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 손에 자기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모습이, 꼭 고양이 같았다. 스킨십을 좋아하는군. 오케이, 접수. ⋯아니 잠깐, 접수는 무슨 접수?! 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별 수 없이, 그냥 손 가는 대로 살살 쓰다듬어주고 말았다.

 

 

 

  바로 다음날부터 보컬연습에 돌입했다. 용복이가 보컬을 배우는 것이 아주 처음인 것 같아서 복식호흡 하는 법부터 시작하였다. 나도 제대로 배운건 아니지만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일단 눕히고 배에 교과서를 올려놓고 숨쉬게 했다.

 

  “혀헝ㅋㅋㅋㅋ, 이겈ㅋㅋ 너무 간지러워허.”

  ⋯금방 내려놓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진짜 강사들이 하듯이 해야 되겠어서 나도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전문적인 강사는 아니니까 혹시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최대한 천천히, 살살 용복이의 배를 눌러주었다.

  꾸욱.

  “흣,”

  “⋯어? 어어⋯ 아팠어? 미안해, 아이고⋯ 어떡하지⋯?”

  “⋯아 아냐아냐! 괜찮아⋯.”

  “⋯그래 아, 어떤 식으로 힘 주는지 알겠어?”

  “⋯응.”

  평소 같았으면 나만 당황하고 넘어갔을 것 같은데 용복이도 당황해하는 바람에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화끈화끈한 얼굴을 좀 식히고자 이번에는 다시 베이스 연습으로 넘어갔다. 초반에는 평소처럼 진행이 되는 듯 싶었다. 그러다 평소처럼 운지법을 알려주던 때였다.

  “아니지. 여기서는 F#만. 봐봐 내가 같이 짚어줄게.”

  내 손이 먼저 닿았던 줄 알았는데, 그 위에 용복이 손이 겹쳐졌다. 아니 잠깐, 그 반대였나? 모르겠다. 손을 떼는 타이밍을 놓쳐 생각보다 오랫동안 겹치고있어 버렸다. 동시에 움찔하고 손을 뺀 순간,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나 먼저 가 봐야겠다.”

  “형 어디 가??”

  “미안, 악기는 그냥 두고 가! 내가 내일 아침에 정리할게.”

  “형!!”

  여름이 오긴 왔나 보다. 에어컨을 틀어놨는데도 금방 다시 더워지는 걸 보면 말이다. 설마 내가 손 좀 겹쳐 잡았다고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겠고. ⋯그렇겠지? 급하게 달려나온 탓에 숨이 헉헉, 턱 끝까지 차올랐다. ⋯사춘기가 다시 왔나? 그래도 이랬던 거 치고 다음 날부터는 평소처럼 잘만 지냈다.

  “형. 나 좀 봐.”

  정정하겠다. 살짝, 아주 살짝 피해다녔다. 부르면 은근히 자리를 피하고 팔 주무르려고 하면 슬쩍 빼고 뭐, 그 정도? 그니까 아예 안 보고 지낸 건 아니었다. 그런데 고새를 못참고 찾아온 용복이였다. 불도저 같군⋯ 별명을 행복이 말고 도복이로 바꿔야겠어. 아니면 불복이? 불고기⋯ 볶음⋯.

  “이제는 아예 무시하기로 한 거야?”

  “앗 쏘리. 그⋯ 뭐 때문에 왔댔지?”

  “진짜 너무하다⋯.”

  “미안⋯.”

  “이따가 부실 가기 전에 따로 얘기 좀 해. 이번에도 피하면⋯.”

  “갈게! 응. 갈게⋯.”

  반 애들이 무슨 권태기 커플이냐며 놀리건 말건 그건 중요한 아니었다. 왜 얘 앞에만 서면 뭐든 들어주게 되는지, 거 참. 아직은 조금 혼란스러운 마음이었지만 일단은 공연도 코앞으로 다가온 큼 제대로 삐지기 직전의 용복이부터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공연 전날, 마지막 합주를 가기 전 방과후 시간. 해가 저무는 학교 계단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는데 날 부른 용복이도 막상 시간이 되니 아무 말 이 같이 허공만 쳐다보았다. 곧 모일 시간이 다가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나도 내가 왜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냥 이상하게 좀⋯ 아오 진짜 미치겠네⋯.

  입을 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허둥지둥 나왔다. 뒷목만 벅벅 긁고 있자니 날 바라보기만 하던 용복이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흐음⋯ 난 이제 알겠는데, 형은 아직 모르나 보구나.”

  “뭘?”

  “괜찮아, 나중에 알아도.”

  “⋯뭐? 뭘 알아?”

  “그렇게까지 당황 안 해도 돼~ 형답지 않게 왜 이래?”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 기분 풀린 거지⋯?”

  “응 완전. 자! 이제 진짜 합주하러 가자. 다들 기다리겠다.”

  “어? 어⋯ 일단 그래⋯ 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해결은 됐나 의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당장 코앞이 공연이었으니 일단은 연습에 집중할 수밖에는 없었다. 연주 소리를 듣고 마이크를 잡으니 잡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일은 그저 평소와 같은 동아리 실적 발표날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해보는 제대로 된 공연이 될 것이었고, 과장 조금 보태어 내 미래를 결정지을 날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나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짠 계획이니만큼 실수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모두들 각자의 두려움과 떨림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고 마침내, 대망의 공연날 아침이 밝아왔다. 오늘만큼은 ‘잔디’ 해서는 안 됐다. 새벽부터 등교하여 아침 조례시간이 되기 직전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누구는 기타 줄을 갈고, 누구는 드럼 스틱이 왜 벌써 닳았냐며 소리치고, 누구는 아무 일도 안 한 척하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익숙해야 할 멜로디인데 손끝이 덜덜 떨린다.

  ‘몇 달을 연습했는데 왜 이래, 이민호.’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도, 긴장으로 금방 식어버리는 탓에 오히려 서늘하다 느껴졌다. 점심시간 채 1시간도 되지 않는 공연. 모두 밥도 쉼도 포기하고 공연만을 위해 일찍부터 땀 흘리며 무대 준비에 힘쓰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외부인도 허용됐다. 옆 학교 학생들, 동네 주민들⋯ 그 속 어딘가에 엄마도 있겠지. 아무 말 없이 그늘 한편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엄마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세팅은 진작에 끝났다. 이제, 시작만을 기다린다.

  “자, 오늘도 시끄럽게 가보자!”

  “라우디, 라우디, 라우디!!”

  여름의 태양은 더 일찍, 더 뜨겁게 내리쬔다. 오늘은 그 아래서 우리가 노래한다. 눈부신 조명 아래로 무대가 슬슬 드러났다. 손에 땀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마이크 높이도 낯설고, 무대 앞으로 고개 내민 아이들의 얼굴도 왠지 낯설었다. 용복이는 나를 보고 작게 입을 벌렸다. '준비됐어?' 하고 묻는 입 모양에 겨우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첫 곡은 익스의 ‘잘 부탁드립니다’, 힘찬 인사로 가장 알맞은 곡이라 생각해서 고른 곡이었는데 의외로 학생들 중에서도 간간이 따라 불러주는 애들이 보여서 텐션이 오르기 시작했다. 떨림은 잦아들고, 점점 내가 공연을 '즐기고 있다'는 감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그 때 그 시절 추억의 노래. ‘붉은 노을’을 부를 때는 학생들이, ‘나는 나비’를 부를 때는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따라 불러 주었는데 정확히 원하던 대로의 반응이었다. 긴장한 탓에 가사를 조금 절을 뻔하기도 했지만 관객들과 부원들 모두의 도움으로 공연은 계속하여 성공적인 분위기로 흘러갔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 이제 곧 마지막 곡,

  “가끔 어떤 말은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예를 들면, 노래가 시 같아서 좋다는 말 같은 거요. 그래서 진짜 시로 만들어봤습니다. 그 사람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이 노래가 닿으면 좋겠네요.”

  용복이의 베이스가 흐르기 시작했다. 낯선 멜로디, 낯선 가사. 하지만 이건 내 말이었다. 숨을 고르고 마이크를 잡았다. 한 음 한 음, 이건 그냥 노래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어야 했다. 입을 여는 순간, 이젠 떨리지 않았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용복이와 함께 노래할 차례였다.

  “물에 잠기는 순간 꺾이는 발목

내려다보고 모두 꺾여버린 줄만 알았던

근황이 어떤가요, 아직 물속인가요ー”

  굴절ー이승은 作

 

  노래를 부르던 중, 무대 아래에서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얼어붙은 것처럼 고개를 들고, 내 입을 따라 읽고 있었다. 그 순간, 목에 걸렸던 감정이 확 터졌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하나 둘, 박수. 누군가가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마치 그것이 신호탄이었던 것처럼 모두들 일어나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ー 관객석 구석에서 엄마가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아, 인사는 제대로 해야지.

  “라우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어느새 남은 것은 우리들뿐이었다. 다같이 땀에 젖은 꼬라지가 웃겼다. 아니 그냥 계속 웃음이 났다. 솔직히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완벽하지는 않은 공연이었다. 그렇지만 이젠 아무렴, 상관없었다. 뭐, 이러다가 엄마한테 붙잡혀 학원 끌려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마도. 일단은 당장의 기쁨을 만끽할 시간이었다.

  “야 됐다!! 다들 사람들 표정 봤어? 그리고 용복, 으븝.”

  ⋯뭔가가, 닿았다. 내가 지금 너무 흥분해서 착각한 건 아니겠지? 내 눈앞에서, 진짜로, 용복이의 얼굴이⋯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방금 그건⋯ 아니 진짜? 심장이 갑자기 엉뚱한 데로 튀어나갈 것 같았다. 그냥 지금⋯ 그, 진짜로⋯.

  “형 진짜 잘됐다!! 음⋯ 혹시 기분 나빴어?”

  “어? 아, 아니⋯ 기분 안 나빴어⋯.”

  용복이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슬그머니 웃었다. 괜히 얼굴이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 옆에서 누가 말을 툭 내뱉었다.

  “⋯뭐 자리 비켜드릴까요?”

  “스읍. 방해하지 말고 우린 이거나 정리하면 되는 거야. 이 눈치없는 새끼야.”

  “아, 같이 해요!”

  “민호 형은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이는데?”

  “어쭈 이게 까불어? 빨리 정리나 하자, 수업 시작하기 전에.”

  “근데 형 귀가 너무 빨간 거 아냐?”

  “⋯신경 꺼.”

  “형 괜찮아?”

  “어어, 괜찮아.”

  “와 이 형 사람 차별하는 거 보소.”

 

 

 

  우리의 공연이 끝났다고 하여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았다. 엄마가 갑자기 음악학원을 등록시켜 준 것도 아니었고, 뭔가 휘황찬란한 기회가 쏟아진 것도 아니었다. 공연 며칠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학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냥⋯ 용복이랑 여기저기 놀러다니며 지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용복이한테도 뭐라도 말하고 싶었는데 괜히 또 오글거릴까봐 그냥 '오늘 고생했다'는 말만 툭 남겼다. 답장엔 하트 하나가 붙어 있었는데, 그거 하나로도 충분하단 기분이 들었다. 변화라는 건 꼭 거창하게 오는 게 아니라, 어쩌면 그런 사소한 게 쌓여서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크흠⋯ 손⋯ 손도 잡긴 했는데⋯. 아 몰라, 하여튼 크다고 할만한 변화는 나에게 생겼다. 나도 모르게 먼저 음악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고, 혼자서 곡 분석을 해보거나, 연습 영상을 돌려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엔 그냥 학원 가기 싫어서 했던 말이, 이젠 진짜 내 얘기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문득 얘기를 꺼냈다.

  “민호야, 너 아예 학교 바꿔볼래?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예전엔 정반대의 말을 듣고 숨이 턱 막혔었는데, 이번엔 좀⋯ 다른 의미로 숨이 막혔다. 아프게가 아니라, 되려 뭉클하게. 나도 모르게 듣자마자 좋다고 하기는 했는데, 걱정되는 건 용복이였다. 이제 막 나랑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다녀서 세상 제일 즐거워 보이는 애한테 다음 학기부터 나 못 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망설여졌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은 빠르게 지나 개학을 일주일밖에 남기지 않은 날에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용복이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저 제 일처럼 축하해줄 뿐.

  “⋯괜찮아?”

  “아쉽지! 근데 그것보다 좋은 게 더 커. 형 가면 나랑 연 끊을 거야?”

  “어?? 아니지.”

  “그럼 됐어. 연락하는 거 잊지 마.”

  그렇게, 방학 마지막 날까지 별일 없이 계속 붙어 다녔다. 그날도 평소처럼 별 약속도 없이 만났는데, 어쩐지 말이 잘 안 나왔다. 그냥 멍하니, 공원 계단에 나란히 앉아 하늘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형, 아무 말 안 해도 돼. 근데 어차피 할 거잖아. 할 거면 빨리 해.”

  농담처럼 가볍게 건네는 말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다른 때보다 좀 진지해보였다. 그래서 그냥 웃으면서 꺼내려던 말이 괜히 목에 걸렸다.

  “⋯개학하면, 나 진짜 여기 없어.”

  “알아. 그래도, 같이 있던 기억은 있으니까 됐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그저 노래 한 곡을 틀었다.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낀 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마치 처음 공연 준비할 때처럼. ‘그날처럼’ 이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기분 묘할 줄이야. 노래가 끝날 무렵, 용복이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중엔 또 볼 거잖아. 그런 사이 맞지, 우리.”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개학. 나는 진짜 전학을 갔다. 1년 꿇고, 그것도 2학년 2학기에 전학이라니. 낯설고 복잡하고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 와중에, 그냥 입시 준비에 정신이 팔렸다. 용복이는⋯ 꼭꼭 연락하라더니, 막상 내가 전학 가니까 며칠 지나지도 않아 연락이 뚝 끊겼다. 아쉬워할 틈도 없었다. 예체능 입시는 생각보다 훨씬 벼랑 끝이었다. 그래도, 결국 합격 발표 날. 나도 모르게 용복이한테 연락했었다. 너무 기뻤으니까. 그날, 그날처럼. 답장은 짧게, ‘축하해!’ 딱 한마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이리 바쁜 것인지⋯. 죽어도 날 무시하는 것일 거라곤 생각 안했다. 그럴 것 같은 애도 아녔고.

  나도 모르는 사이 밴드부의 추억이 아주 깊이 남았었는지 대학에 가서도 바로 밴드 동아리부터 들어갔다. 선배가 꼬셔서 응한 거였는데 신입생이 오기 전까지는 정식동아리도 아녔다. 이듬해 겨우겨우 창설한 밴드부의 이름은⋯ 뭐랬지? 스트레이트키즈? 다 큰 성인들이 뭔 키즈냐고 면박을 줬던 기억만 대충 난다. 그리고 그 때가 될 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딱 올해까지만이다. 별 일이 없었다면 작년에 신입생이 되었을 용복이에게선 아직도 연락이 없었다. 이제는⋯ 그만해야지. 이쯤에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만의 마무리를 준비하던 요즘, 동아리는 점점 커져갔다. 이제는 나름 진짜 밴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직 베이스 자리는 비어있는 채였는데, 지원자는 몇 있었다. 다만 모두 내가 죄다 까버렸을 뿐. 어떻게 몇 달 연습해서 공연한 용복이보다도 나은 애가 없지? 그래서 결국 오늘 대책회의를 한답시고 모인 거였는데 시작한 이래로 내 험담만 줄줄 듣는 중이었다.

  “야 민호야,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제 슬슬 아무나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어? 이제는 베이스 아예 모르는 애들만 남았을 것 같애⋯.”

  “어 그럼 없이 해.”

  “근데 형 여친은 안사귀어? 애들이 형보고 애라도 숨겨뒀녜.”

  “어 첫째가 올해 초등학교 들어가.”

  “진짜?? 오 그럼 고자냐는 소문은 가짠가보네.”

  “지성아, 생각이란걸 해보겠니?”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얘들아⋯.”

  오늘도 제대로 된 회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5월. 슬슬 햇살이 따뜻해져 오는 시기가 오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언제나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리고 내 삶을 바꿔주었던.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으나 저들끼리 떠드느라 바쁜지 나만 알아챈 듯 싶었다.

  “네 들어오세요ー”

  문이 열렸다.

  “여기 베이스 자리 남나요?”

  참나, 뭐 하다가 이제야 온 거람.

  “어서와.”

  조용해진 동아리방에 이제는 조금 더 낮아진 목소리가 울렸다.

  “형이랑 다시 같이 밴드하려고, 그래서 좀 늦었어.”

  내 맘을 읽은 듯 예쁘게 웃는 모습이 그 때와 똑같았다.

  열린 문 틈으로 갇혀있던 공기가 밀려나고, 익숙한 바람이 불어왔다.

d4_edited_editedsq.webp

2025 死活記: Neo Noir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